"부부가 함께 골프치면 이혼한다"는 얘기가 있다.
"설마 그럴까?" 하던 그 말이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바뀐건 며칠전
라운드에서 였다.
오래간만의 필드행을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연습장을
향했다.
부지런히 샷을 가다듬고 기분좋게 티잉그라운드에 올랐는데.
드라이버샷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믿었던 페어웨이 우드샷이 배신을 밥먹듯 하기 시작했다.
연달아 이어지는 미스샷, 나는 동반자들의 기다림을 무릅쓰고 계속 샷을
해야만 했다.
그것도 "이번에는 잘 쳐내고 말겠다"는 생각에 연습스윙까지 철저히
곁들여서...
그러나 아무리 연습스윙을 하고 쳐도, 미스샷은 나아지질 않았다.
급기야 파5홀을 무려 9타만에 끝내고 그늘집에 앉았다.
나는 속상해 있는 나를 동반자들이 위로해 줄줄 알았다.
그런데 위로는 못해줄망정 선배들 왈, 나보고 "슬로 플레이어"란다.
이는 골프에서 퇴치돼야 할 가장 악명높은 요소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슬로 플레이어"가 바로 나라고 몰아붙이다니...
속상한 마음에 서러움까지 겹쳐 거의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내볼이 좀 헤맸기로서니 날보고 슬로 플레이어라, 저 사람들, 자기들은
올챙이 적 안거치고 그냥 막바로 개구리 됐나"
"아, 서럽다. 동료간에 이정도로 서러우니, 허물없는 부부사이야
오죽하겠냐"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다 그중 한명이 또 곁들였다.
"앞으로는 연습스윙을 하지 말고 곧바로 치라"는 것이다.
"연습스윙을 하나 안하나, 불안한 마음에 하는 스윙은 어차피 같은법,
여물지 않은 연습스윙은 안하니만 못하다"는 얘기였다.
워낙 야단을 맞아 난 그때부터 연습스윙을 할 엄두도 못냈다.
그런데 바로 실제 스윙을 하니, 연습스윙하면서 생긴 불안한 마음이 싹
가시고 볼은 훨씬 더 잘 맞아주었다.
그러면서 지연플레이로 동반자에게 가졌던 미안한 마음이 가시며 내샷에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다.
그 순간은 씩씩거렸지만, 그들의 가르침이 내가 앞으로 멋있고 훌륭한
골퍼가 되길 바라는 진심어린 충고였음을...
만약 그날의 가르침을 새기지 않았다면 나는 미스샷을 연발하고도
언제까지나 동반자들에게 위로받기만 바라는 나약한 골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환영받는 하수가 되는 길.
그것은 충고가 쓸수록 몸에 좋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것이 아닐까.
그러니 "부부가 골프치면 이혼한다"는 말은 당치않은 소리다.
멋있는 골퍼가 되기위해 언젠가 맞아야 할 "매"라면 즉시 맞는 매가 훨씬
충격적이고 효과도 클테니까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