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 < 미국 네브라스카대 경영학 석좌교수 >

지난 7월에 필자는 영국으로부터 강의 초청을 받아 그곳에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그전에도 영국의 여러 대학에 객원교수로 초청을 받아 20여번 여행을
했었다.

운이 따라서인지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골프코스를 여러 곳 들러볼 수도
있었다.

이번엔 그 유명한 카누스티 골프장에서 영국오픈의 마지막날 경기를 관전
하게 되었다.

경기 시작 전 타이거 우즈, 데이비드 듀발, 콜린 몽고메리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자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미국의 저스틴 레너드와 영국의 폴 라우리 선수가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마지막 18번 홀을 남겼을 때는 거의 무명선수였던 프랑스의 장
벤드벨드가 3점이라는 큰 차이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18번 홀의 그린 옆 그랜드스탠드에 앉아 망원경
으로 벤드벨드의 드라이브샷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그는 너무 큰 대회이고 마지막날 마지막 홀이어서인지 긴장한 탓에 드라이버
샷부터 실수했다.

그런데도 필요 이상의 욕심을 냈다.

계속 무리수를 둔 것이다.

그는 거의 손에 잡다시피했던 우승컵을 마지막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남의 손에 넘겨주고 말았다.

우리는 벤드벨드의 경우처럼 개인뿐 아니라 기업 또는 국가도 가끔 큰
실수를 저지르거나 불행한 일에 당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것은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인생의 진리이다.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구를 원망하거나 그것을 감추려 하든지 또는
욕심을 내서 한탕을 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SAS비행기 회사의 사장이었던 얀 칼슨이 쓴 "진실의 순간"이라는 책은
여행사에 이렇게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고객의 짐을 잃어버렸을 때처럼)
그것을 잘 해결하는 것이 고객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기술한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진통제인 타이레놀이라는 약으로 유명한 존슨 앤드 존슨 회사는 어떤 고약한
사람이 미국 시애틀의 약국에서 타이레놀에 독약을 넣어 사람을 죽게 한
시련에 당면했다.

그때 이 제약회사는 그 사실을 숨기려 하기보다는 온 국민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시애틀 시내의 약국은 물론 전세계에 공급된 타이레놀을 모두 회수
했다.

또 그런 일이 재발하지 못하도록 새로운 포장으로 타이레놀을 생산했다.

막대한 비용이 들었으나 그 불행한 사건을 현명하게 처리해 국민들이 인식
하게 된 존슨 앤드 존슨사에 대한 신용은 크게 상승했다.

전화위복이라 할까.

얼마 지나지 않아 판매액이 오히려 증가한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장 벤드벨드가 자기의 불행한 드라이브샷을 잘 처리했었다면 그는 4대 골프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영국오픈의 영광된 우승자로서 그의 고국 프랑스로
금의환향했을 것이다.

요사이 한국의 신문을 보면 IMF 위기를 완전히 잊은 듯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개인적인 견해로도 지금까지의 한국경제 위기 상황극복 과정은 대체적으로
잘 진행돼 오고 있다고 생각하나 진실로 우리의 경제가 위기 상황을 완전히
극복하고 안정 궤도에 오른 것일까.

IMF 경제 위기 전보다 증가한 실업률, 여전히 낮은 국가신인도, 최근의
점차 줄어드는 무역수지 흑자 및 소비재 수입 증가 등의 악재가 여전히 우리
주위에 상존하고 있다.

게다가 외국의 전문가들은 은행 및 재벌개혁의 미비 등 여전히 한국의
경제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금까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개혁의지가 경제
개혁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 어느 정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또 국제적인 경제 환경이 우리 경제에 유리하게 작용한 점도 있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개혁의 진행과정이 순조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계 경제는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IMF의 경제 위기는 한국이 그동안 누적되어온 경제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 서로가 지나간 잘못을 비판하기보다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재도약
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슬기가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이제는 지금까지의 잘못을 인정하며 서로의 어려운 점을 이해해야 한다.

비록 단기간에는 우둔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정도를 중시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나씩 재점검하여 두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우리가 벤드벨드의 불행을 보면서 우리의 앞길을 현명하게 내다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