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 아주대 교수 / 환경도시공학 >

한국철도가 오는 18일로 탄생 1백주년을 맞는다.

철도는 출생부터 불우했다.

세기말 열강들의 이권다툼 끝에 사생아처럼 태어났기 때문이다.

일제는 한반도를 만주침략을 위한 병참기지로 활용하고자 공병대를 보내
노선 부지를 강탈하고 농민들을 강제부역시키며 철도를 확장했다.

당시 "양귀는 화륜선을 타고 오고 왜귀는 철차를 타고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국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해방될 때만 해도 우리의 교통망은 철도망 중심으로 짜여져 있었다.

식민통치를 위해서는 도로보다 철도가 제격이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경제개발 초기에는 산업수송 차원에서 철도복원이 제일 먼저
진행됐다.

60년대말 고속도로의 등장과 함께 철도는 도로교통에 밀려 사양길로 접어
들게 된다.

1960년 국내 여객수송의 49%, 화물수송의 91%를 차지하던 철도가 지금은
각각 28%와 19%로 떨어졌다.

도로는 고속성장기에 연장 기준으로 3배 이상 늘어났고 4% 수준의 포장률이
80%대로 높아졌다.

고속도로도 2천km에 이르도록 발전했다.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비해 철도는 서울주변의 몇 구간이
신설되고 일부 구간이 복선화 전철화 되었을 뿐 일제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철도부문에 대한 투자는 철저히 사각지대였다.

투자없는 경영은 계속 적자를 누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 우리의 자동차시대는 고속 질주해 왔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자동차 보급이 수백만대에 이르러서야 고속도로가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전국의 자동차가 5만대밖에 없었던 시절 우리는 이미 고속도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교통망은 도로 중심으로 짜여지게 됐다.

지금 전국의 자동차는 1천만대를 훨씬 넘는다.

자동차는 이제 우리의 국토와 도시와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의 이용은 낭비적이다.

많은 땅을 필요로 하고 에너지 소모율도 높다.

값 비싼 개인교통수단이다.

철도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의 수요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동안 자동차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우려는 정부의 의지도 내수확대를
촉진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지금 한국의 유류소비 증가율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

한번 생각해 보자.

한국과 같이 인구 밀도 높고 좁은 나라에서 자동차 중심으로 교통체계를
만들 수는 없다.

대량의 교통수단이 줄기를 이루고 도로 등 다른 수단이 연계돼야 한다.

철도는 초기투자가 크지만 에너지 절약적이고 공해가 적은 교통수단이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교통체증을 유발하지 않는 수단이다.

그러나 철도는 덩치가 크고 경영이 관료화함으로써 그동안 국영이라는 틀
속에 안주해 왔다.

시설은 워낙 투자가 없었던 만큼 낡고 노후화돼 유지관리비가 더 들어간다.

그래서 경부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철도의 사양화는 비단 한국만의 얘기는 아니다.

단거리나 중거리는 승용차의 "문전에서 문전"까지의 편리함이나 버스의
노선 융통성을 따를 수 없고 장거리는 비행기의 속도와 경쟁하기 힘들다.

그만큼 철도의 매력이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철도의 역할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 자동차에 물든 선진국에서도 철도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철도가 가진 장점, 즉 고에너지가 시대에 적합한 고속의 대량운송수단이란
점이 새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철도기술의 발달에 따른 고속화는 철도의 상대적 경쟁력을 높여
주었다.

유럽에서는 지금 고속철도를 중심으로 한 유로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다.

가까운 일본도 신칸센 중심의 교통망을 새로 짜고 있다.

대도시에서의 철도역할도 크다.

가령 도쿄와 런던 주변지역의 거미줄같은 철도망은 곧 그 도시의 동맥이자
경쟁력이다.

두 도시는 3천km가 넘는 철도망을 갖고 있다.

광역전철망을 갖추지 못하면 도시의 기동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우리 수도권에는 고작 1백70km의 전철망이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는 고속철도를 만들고 있다.

부실공사 시비와 얼기설기 얽힌 정치적 타산 때문에 우여곡절도 많았다.

공사가 느리지만 기대는 크다.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한국 수송사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토가 통일되면 우리 철도는 자연스레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나
중국을 경유해 유럽까지 연결될 것이다.

철도 1백주년을 맞아 철도청은 앞으로 90조원을 마련해 2천여km의 철도망을
건설하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그림은 화려하나 이를 조달할 재원도 문제고 운영은 더욱 문제다.

민영화를 비롯한 구조혁신 방안을 서두르고 수도권 전철은 분리해 새로운
운영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