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 대구대 교수 / 경영학 >

필자는 금세기를 대표하는 석학 가운데 한 사람인 피터 드러커 교수를
지난해말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지식사회(knowledge society),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
그리고 지식작업(knowledge work) 등의 용어를 만든 경영학자이자
미래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요즘 풍미하는 지식기반 경제(knowledge based economy)의 기초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드러커 교수는 필자에게 "올해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필자가 머뭇거리자 드러커 교수는 "저는 방금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라면서 책 한권을 내밀었다.

18세기 하층 유태인 집안으로 출발하여 유럽의 최대 금융업자로 성장한
로스차일드 가문에 관한 소설 "로스차일드가의 흥망"이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소규모 금융업자 암셀 마이어 로스차일드는 5명의 아들을
런던 파리 빈 나폴리 등지로 보냈다.

그곳에서 은행의 지점업무를 맡기고는 형제간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게 했다.

1815년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영국의 웰링턴에게 패한 사실을 미리
안 파리의 동생이 런던의 형에게 이 사실을 비둘기를 이용해서 알려준다.

그 다음날 형은 런던의 증권가에 가서 매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많은 사람들은 로스차일드의 참담한 얼굴을 보고 웰링턴 장군이 전쟁에서
진 것으로 지레 짐작해 주식을 서둘러 팔아버렸다.

물론 로스차일드는 남모르게 주식을 사모았다.

이런 식으로 정보를 이용하여 로스차일드 가문은 큰 자본을 축적했다.

우리는 지금, 1백여년 전 곡괭이와 호미로 일을 하던 농경사회에 살지
않는다.

각종 기계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던 산업사회도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식.정보사회에 살고 있다.

곡괭이와 호미가 농경사회의 도구였고 각종 기계가 산업사회의 도구라면
지식.정보사회의 도구는 휴대폰 팩스 PC 인터넷 등이다.

농경사회에서 주요 생산요소는 토지였다.

산업사회의 주요 생산요소는 노동과 자본이다.

지식.정보사회의 주요 생산요소는 당연히 지식과 정보다.

정보와 지식은 정보고속도로와 정보도구를 이용해 전세계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든지, 무슨
기술을 갖고 있다든지 하는 것이 자랑스러울 게 못되는 세상에 살게 된다는
것이다.

농경사회와 산업사회에서는 한번 얻은 졸업장이나 자격증, 그리고 터득한
기술의 효력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어떤 정보나 지식의 효력이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그런 지식.정보사회에서 앞서 가기 위해서 필요한 능력은 3가지다.

첫째,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다.

백수십년 전에는 전쟁 정보를 남보다 한발 앞서 수집하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보냈지만 지금은 브리태니커 사전 33권 1질을 단 2초만에 전송할 수
있는 시대다.

연기 신호를 이용하여 일기 예보를 설명하는 53개의 단어를 만드는 데는 약
7분이 소요된다.

2시간짜리 영화를 보낸다면 반세기가 걸릴 것이다.

오늘날의 전화선은 연기 신호보다 6만배 더 빠르다.

동축 케이블과 인공위성을 연결하면 50만배 더 빠르다.

현재 실험중인 최상의 광섬유는 1조배나 더 빠르다.

대폭(bandwidth)이 지니는 기술적인 한계는 압축(compression)이라는 기술을
통해 극복된다.

이런 시대에는 정보의 소재파악(know-where)과 접근능력이 중요하다.

둘째, 그 지식들을 가공하여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능력이다.

연로한데도 불구하고 신간 서적을 읽고, 정보를 수집하고, 새로운
지식으로 가공하여 자신의 글의 기초로 삼는 드러커 교수처럼 말이다.

그는 "한국은 땀과 근육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모두 달성했으므로
앞으로는 지식을 이용하여 선진국을 상대로 경쟁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억력이 아니라 창의력과 응용력이 더 강조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배우는 학습능력이다.

오늘 최첨단 기술이 내일이면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이다.

사무용 기기를 예로 들면 필자가 30년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판으로
일했으나 그후 전자계산기로, 지금은 PC로, 그것도 2~3년마다 새로 나오는
신제품을 쓰고 있다.

신제품은 그때마다 가격은 더 싸고 성능은 더 높아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식의 반감기(half life)는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초중고 시절에 배운 지식은 20년, 대학에서 배운 지식은 10년, 기업의
교육훈련은 5년, 컴퓨터 관련 지식은 1년만 지나면 반으로 줄어든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끊임없이 습득하지 않으면 곧 뒤지고 만다.

지식사회의 3가지 능력을 요약하면 정보수집능력, 지식가공능력, 그리고
학습능력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