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에베레스트산의 정확한 높이를 두고 논란도 많고
얽힌 얘기 또한 적지않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에 인도주재
영국출신의 측량기사들이 주도하여 여러차례 이 산의 계측이 시도되었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언젠가 측정을 성공리에 마치고 결과를 보니 산의
높이가 더도 덜도 아닌 2만9천피트로 나왔다고 한다.

그와함께 측량기사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대로 발표하면 천신만고 끝에 얻어진 정확한 측정인데도 일반인들이
제대로 믿어주지 않을 것으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아하,기사들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대충 측정한
것이로구먼" 하든가 "측정은 제대로 했더라도 아래 세자리는 반올림을 해
버린 모양이구나" 아니면 한걸음 더 나아가 "아래 세자리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밝혀달라"고 말하거나 요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원래 계측된 높이에
조금 더해서 발표하기로 했다는 얘기다.

반드시 그래서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현재 에베레스트산의 공식적인 높이는
1954년 인도정부가 발표했던 데에 따라 2만9천28피트(8천8백48m)로 되어
있으며 산의 이름은 한때 인도에서 근무했던 영국인 측량국장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자체의 신빙성에 의문이 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뢰"라는 문제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는 뜻에서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최근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망각한 여러
작태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수 있다.

정치가들은 정치가들대로,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또 그들대로 수시로 말이나
행동을 바꾸거나 뒤집음으로써 자신들의 신뢰를 무너뜨려가고 있다.

미국의 프란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를 사회적자본으로 간주하면서 사회와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뢰가 부족한 사회가 발전을 하려면 크나큰 비용을 치러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우리는 사실 이렇게 중요한 교훈을 몸으로 직접 경험하며 배운사람들이다.

IMF위기는 신뢰의 위기였다.

한국금융기관에 대한 불신, 당시 대통령과 경제관료들의 위기관리능력에
관한 불신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회수를 촉발하게 되었고 결국 한국
경제는 엄청난 고통과 수모를 감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지난 1년반동안 우리는 국내외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경제주체별로 피나는
노력을 쏟아왔다.

이것이 다소나마 결실을 맺어 신뢰가 서서히 회복되면서 경제의 회복 또한
급속도로 이루어지는 등 상승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값비싼 교훈은 아랑곳없이 다시 신뢰를 파괴하는 행태들이
줄이어 벌어지고 있으니 걱정인 것이다.

대우그룹사태로 인한 금융시장의 요동은 우리경제에 대한 대내외 신뢰의
현주소와 취약성을 경고해 주는 것이라고 볼 것이다.

혹자는 정치인들이야 원래부터 신뢰도가 낮아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국민들이 믿지 않았으니 지금 하고 있는 짓들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이 부패 식언 이합집산 등으로 추락한 자신들의 신뢰와 인기를
엉뚱한 수단을 통해 회복하겠다고 나선다면 적지 않은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특히 정치계절이 다가오게 되면 경제는 뒷전으로 몰리게 되고 사정정국,
대기업과 그 총수들에 대한 이지메, 노조를 의식한 선심성 발언, 인기를
겨냥한 세금감면과 정부지출 증대, 원외투쟁 등의 전략들이 동원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봉책들은 우리경제에 큰 부담이 될 것이고 그나마 어느 정도
되찾았던 우리의 대외신인도를 다시 떨어뜨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경제정책담당자들의 태도다.

힘이 강한 정치논리에 밀리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어려운 상황인
만큼 단합되고 조율된 목소리를 내어야 할 것인데 그렇지 못하니 시장을
혼란시키고 불안감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감 또는 경쟁심리 때문인지는 모르나 제일및 서울은행 매각, 추경예산,
삼성자동차, 대우그룹 등 굵직굵직한 문제들에 대하여 당국자들은 제각기
딴소리를 하거나 수시로 입장을 바꿈으로써 정부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자만심에 차있을 때가 아니다.

IMF위기 직후의 치욕을 되새기며 당시의 심경과 각오로써 잃었던 신뢰를
되찾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할 때다.

무너지기는 쉬워도 일으켜 세우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 신뢰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