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발계획이 한창 추진되던 71년 봄 스물세살의 한국 처녀가 단돈
1백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식모살이를 떠났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미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50이 넘은 나이에 하버드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만학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5월 KBS 일요스페셜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에 소개돼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서진규(51)씨.

그가 자전 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북하우스)를 출간했다.

그는 가난한 엿장수 딸로 태어나 꿈과 도전의 의미를 온 몸으로 보여준
여인.

외롭고 힘든 인생을 꿈과 인내로 극복한 의지의 한국인이다.

일요스페셜 방송사상 가장 많은 시청자평이 인터넷에 올랐고 그 다음주
재방송까지 할만큼 그의 삶은 온 국민의 가슴을 울렸다.

48년 경남 동래 태생.

제천중학교와 서울 풍문여고를 졸업한 뒤 가발공장 여공, 골프장 식당
종업원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

미국으로 식모살이를 떠난 뒤에도 고난의 가시밭길은 계속됐다.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나 폭력에 시달렸고 생후 8개월 된 딸을 둔채
미군에 자원입대했다.

둘째를 유산하고 한달만에 신병훈련소에 들어간 그는 열살 아래의 젊은이들
과 죽을 각오로 경쟁한 끝에 최우수 성적으로 군문에 들어섰다.

그는 혹독한 군대생활 속에서도 딸에게 가장 구체적이고 치열한 삶의 모델을
보여줬다.

딸 성아는 이런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교 졸업 때 전국 2백50만명중 1백41명에게 주어지는 대통령상을 받으며
하버드대학에 입학, 어머니의 콧등을 시큰하게 했다.

성아는 지금 이화여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와 있다.

20년간의 군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96년 하버드대학원에 입학한 서씨는 현재
국제외교사 동아시아언어학과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희망없이 산다는 것"이라며 자신의 삶이
"꿈과 용기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됐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진솔한 고백은 어떤 대학자의 잠언보다 감동적이다.

그의 인생은 하버드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영준(전 민음사 주간)씨
의 눈에 띄었고 이번 책도 이씨의 주선으로 나오게 됐다.

< 고두현 기자 kd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