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J 배로 <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

최근 선진7개국(G7)은 40여 극빈국들이 안고 있는 약 2천3백억달러의 외채중
7백10억달러를 탕감해주기로 결정했다.

극빈국을 채무상환 부담에서 해방시켜 국제 경제체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 결정이 극빈국 지원책으로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는 생각볼 필요가
있다.

외채탕감은 극빈국의 개혁을 지연시켜 경제발전을 저해할수 있기때문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국제경제기구들의 자금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얼마전 극빈국 채무탕감과 관련해 무척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하버드대 동료인 제프리 삭스교수가 어느날 전화를 걸어 "유명인사"와
점심을 먹자고 했다.

그 유명인사는 인기높은 록그룹 U2의 리드싱어 보노였다.

경제연구에 일생을 바치고 있는 나로서는 보노를 만난다는 사실에 조금
겁이 났다.

그래서 생각해보고 알려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다음 음악에 관심이 많은 딸 리사에게 자문을 구했다.

딸은 "최고의 영광"이라며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보노와의 점심자리가 마련됐다.

식사중 보노는 "주벌리(jubilee)2000" 캠페인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했다.

(주벌리는 성서에서 나온 말로 50년마다 돌아오는 유태인 축제. 이때
채권자는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줬다)

이 캠페인은 극빈국들의 외채를 탕감해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순회공연
프로그램이다.

그는 이 캠페인에 대한 경제적 당위성을 얻고자 했다.

나는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채무탕감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문제라면 좀더 진보적인 성향의 경제학자를 찾아보는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보노는 "그점이 바로 당신을 만나려고 한 이유"라고 말했다.

나같이 보수성향의 경제학자들이 주벌리캠페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싶다며 자신의 견해를 먼저 밝혔다.

그는 "극빈국의 채무탕감이 미국 경제정책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국제자본이 생산적인 용도로 쓰일려면 극빈국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록스타의 경제지식은 정말 감탄할만 했다.

그러나 나는 극빈국 채무경감이 왜 실효가 없는지를 설명했다.

지금 빈국에 필요한 것은 잘 짜여진 법, 시장지향적인 경제시스템, 교육,
거시경제 안정이라고 알려줬다.

자원도 없고 경제구조도 허약한 나라에 대한 "공짜돈(money for nothing)"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자원은 부족하지만 경제구조가 잘 짜여진 후진국에 돈이 들어가면 생산적
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이 추진중인 채무탕감계획은 경제구조가 형편없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그동안 채무탕감 차관공여 원자재제공 등 다양한 형태로 빈국을
지원해 왔다.

그렇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나는 보노에게 "빈국을 진정으로 돕는 길은 외채를 성실하게 갚고 외국과의
기존협정을 이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노도 빈국들이 채무상환의무를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빈국의 외채중 대부분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잘못된
정책에서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미국의 잘못된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는 얘기였다.

미국은 해당국 독재자의 권력을 보강시키는 차원에서 자금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독재자들은 미국에서 받은 돈을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데 사용했다는게
보노의 주장이었다.

이같은 지원금은 시작부터가 잘못됐으니 빈국들이 갚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지원금이 경제발전용으로 쓰이는 대신 독재자의 사복을 채우는 상황
에서 빈국들은 이자상환에 허덕이다 더욱 가난해졌다고 주장했다.

삭스 교수도 보노의 말에 어느정도 공감했다.

그렇다고 삭스가 보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 것은 아니다.

그는 채무국 시각이 아닌 세계은행과 IMF등 채권자 관점에 이 문제를 봐야
한다고 보노에게 설명했다.

국제기구는 빈국의 채무를 탕감해줄경우 막대한 자금을 결손처리해야 한다.

그것도 빌려줄 당시의 가치가 아닌 현재 시장가치로 털어내야 한다.

이때 국제금융기관의 대출능력은 크게 약해진다.

채무탕감으로 인해 빈국에 대한 대출이 줄어들수 있다는게 삭스교수의
의견이었다.

삭스와 나는 빈국지원 프로그램에 채무경감안을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보노가 경제학교수들과 국제경제 문제를 논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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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로버트 J 배로(Robert J.Barro) 하버드대 경제학교수겸 후버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칼럼으로 미국의 경제뉴스전문 통신사인 APDJ가 보도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보수성향의 그는 하버드대에서 진보성향의 제프리 삭스교수와 쌍벽을 이루는
경제학자다.

< 정리=한우덕 국제부 기자 woodyha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