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본사 논설실장 >

이솝우화의 물에 떠내려간 당나귀 얘기가 생각난다.

늙은 아버지가 타고 가도, 어린 아들이 타고 가도, 두 사람이 함께 타고
가도 지나가던 사람들은 입방아를 찌었고 그래서 당나귀를 메고 가다 결국
물에 떠내려 보낸 아버지와 아들을 되새기게 되는 까닭은 간단하다.

이건희 회장의 삼성생명주식 4백만주 출연이후 나오고 있는 일련의 주장과
주요 정책당국자들의 갈피를 잡지못하는 듯한 움직임 때문이다.

삼성생명을 연내에 상장시키겠다고 나서더니 하루가 안가 생보사 상장이익의
사회환원을 위해 상장허용 여부를 내년에 가서나 결정하겠다고 물러서는 것도
그렇고, 삼성자동차를 선가동 후인수원칙으로 정상화하라는 대통령지시가
있었다더니 전달과정에서 와전된 것이라며 "가동은 인수업체가 정해지면 그
업체가 결정할 것"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되는 일인지 알길이 없다.

경제를 경제논리로 풀어야한다는 것은 당위다.

또 그것은 책임있는 정책당국자가 아닌 국외자격인 경제평론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제현실은 꼭 경제논리로만 풀기에는 어려운 경우도 결코 없지
않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런 경우의 정부개입에 대해서는 정치논리가 경제를 왜곡시킨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지만 현실을 좀더 정확히 이해하려면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노력 또한 긴요할 때가 있다.

복잡하기만한 삼성자동차-삼성생명 상장문제만해도 그렇다.

우선 이 문제의 시발이 된 이른바 빅딜을 따져보자.

정부에서 무슨 권한으로 빅딜을 강요하느냐, 그것은 시장의 논리에 반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자동차산업개편의 필요성이 있고 현실적으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문제해결이 어렵다는 인식 또한 잘못된게 아니라고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성자동차 부실 뒤처리문제에 이르면 경제논리와 현실의 상충은 더욱
분명해진다.

주주의 유한책임을 바탕으로하는 주식회사제도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 회장
에게 사재출연을 요구하는 것은 분명히 비논리적이고 문제가 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 부실을 삼성이 책임지지않고 은행으로 떠넘겨 결국
국민세금으로 메운다면 국민정서가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인식
또한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동안의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관계당국자들도 당초에는 삼성생명의 상장을
허용해 그 이익으로 삼성자동차 부실을 해결토록 하는 것이 "방법"이라는데
삼성측과 인식을 같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액면 5천원짜리 1주가 70만원으로 상장될 경우 삼성측이 누리게될
엄청난 자산소득에 대한 거부반응이 표출되면서 당국자들의 주장도 달라지고
있는 느낌이다.

여기에 겹쳐 삼성자동차 폐쇄에 따른 부산시민들의 반발과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여당의 목소리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

관료출신의 경제부처장관들로서는 정말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논란이 뒤따를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안이니 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울게 당연하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는 사고를 단순화하는 것이 오히려 방법이다.

우선 삼성생명을 공개하지 않고 삼성자동차 부실을 해결할 방법이 과연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삼성자동차 부실중 2조8천억원은 무조건 이건희 회장이 책임져야 한다면
그 방법은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삼성생명을 빠른 시일안에 상장토록 허용하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이 회장의 삼성 계열사 주식을 몰수, 삼성그룹을 강제로 해체시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상황에서 후자가 과연 가능하고 바람직한 것인지, 전자가
그나마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방법이 아닐지,판단은 경제정책당국자들이
내려야할 일이다.

이회장 소유 삼성생명주식을 우선 삼성계열사에 주당 70만원씩 인수시키는
것은 시간을 버는 방법일수는 있으나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특혜시비나 소액주주반발등 논란이 뒤따를 것도 분명하다.

엄격한 경제논리로 따지면 자산재평가 이익과 상장이익은 전혀 별개다.

전자가 주로 보험계약자에게 귀속돼야할 것은 당연하지만 증시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마련인 상장이익이 대부분 보험계약자에게 돌아가야하는지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어쨌든 생보사공개문제와 삼성자동차 손실부담 문제는 이제 명확한 결론을
내야한다.

이랬다 저랬다하다보면 자칫 당나귀를 물에 떠내려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는 것을 명확히 인식해야한다.

서울보증보험의 삼성차 회사채대불문제만으로도 금융시장에 대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