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수 < 숙명여대 경제학과 / 경제학 >

종합주가지수가 900선을 넘어 1,000선을 넘나본다.

1년전만 해도 300선을 밑돌던 주가가 3배 이상 오른 것이다.

직장인들이나 주부들이나 만나면 모두 주식 이야기다.

나는 얼마를 벌었다, 내년 총선 때까지는 확실히 오를 테니까 너도 늦기
전에 빨리 들어와라, 연말까지 1,200선은 무난하다, 종목선택은 어떻게 하라
등등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요즈음 증시를 보면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를 보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이를 마법에 빠진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그린벨트에 대한 규제완화, 부동산에 대한 각종 세제혜택 등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대책도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지난 반년동안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도 꽤나 올랐다.

주식바람이 멎을 때쯤이면 부동산바람이 본격적으로 불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증권시장과 부동산시장의 회복이 경기회복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하고,
경기가 회복되어야 경제위기도 빨리 극복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자산가치 상승을 통한 경기회복을 너무 서두르다가는 경제에 거품이 다시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난 정권 초기 "신경제 100일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다양한 경기
부양책들이 빠른 시일내에 경기를 회복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외환위기
를 불러왔던 경험을 우리는 벌써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서두르는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과속운전 신호위반이 우리 일상생활의 하나가 된 지 오래다.

늦은 밤 "총알택시"에 목숨을 맡기고 집으로 향하기도 한다.

술을 마실 때에도 폭탄주를 계속 돌려가면서 빨리 취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리고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건축물을 지을 때에도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느냐보다 얼마나 단기간에
완성했느냐가 자랑이 되고 있다.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 수많은 대학생들이 전공을 가리지 않고 지금 고시촌
에서 썩어가고 있다.

젊어서 고시에 합격해야만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고시공부는 시작된다.

그것도 단 한번에 영감님 소리를 듣는 사법고시가 인기라고 한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수 있으나 결혼을 통해 단번에 신분상승을 꾀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소위 팔불출 가운데 다음과 같은 유형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가지고 있는 돈을 아직도 은행에 예금하는 사람, 뮤추얼펀드인가 뭔가 하는
데 가입 한번 못해본 사람, 새로 분양되는 아파트 청약 한번 못해본 사람
등이 그들이다.

성실히 일해서 재산을 모으기보다 투기로 재산을 불리는 시대가 다시 오는
느낌이다.

세금을 떼고 나면 은행이자율이 6%대밖에 안되니까 그것도 그럴 만하다.

그러나 투기대열에서 빠져 있는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

철학자인 존 롤스(Rawls)는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사회라고 주장한 바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존 롤스의 사회정의 차원에서 보면, 우리경제의 방향설정에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앞에서 설명한 유형과는 조금 다르지만 일부에서는 "경제위기는 끝났다"
또는 "경제의 구조조정도 이만하면 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경제위기가 다 극복되었다고 선언하자는 정부내의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진짜 중요한 기업과 정부의 구조조정은 아직도 멀었는데 벌써 다 되었다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조급증 환자인 것같다.

영국의 BBC방송은 이와 같이 서두르는 우리의 모습을 "빨리빨리 증후군"
이라고 비꼬아 부른 바도 있다.

지나치게 빨리 선진국이 되려고 서두르다가, 아니 섣불리 선진국 국민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경제위기를 맞은 지 1년반이 지났다.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빨리
극복하는 것보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극복해 보았으면 한다.

위기극복을 서두르다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오면 안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많은 고개를 넘었다.

앞으로도 많은 고개가 남아 있다.

이번 고개를 달음박질쳐서 넘는 것이 멋있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잘못하면
제풀에 지쳐 쓰러질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이 마치 토끼와 같았다면, 이제는 거북이의 지혜가 더
필요한 때가 아닐까.

서두르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갖고 걸어갔으면 좋겠다.

< jsyoo@ sookmyu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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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박사
<>KIEP 연구위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