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체제를 조기에 졸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외환이다.

외환을 늘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수출이 잘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주가가 회복되고 실업률이 떨어지는 데도 IMF체제 조기졸업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은 바로 수출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IMF체제로 들어간 이후 원화환율이 상당히 절하됐다.

그만큼 가격경쟁력은 높아진 셈이다.

그런데도 수출이 잘되지 않기 때문에 걱정이 더더욱 큰 것이다.

흔히들 한국이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우리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수출이 부진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도 원인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세계경제가 구조적으로 변하고 경쟁상대가
달라지고 있는 데도 이런 변화를 간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수출경쟁 상대를 말하라고 하면 우리와 비슷한 대만 홍콩 싱가폴이나
우리보다 선진국인 일본 유럽제국 등을 쉽게 꼽는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한국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등 저개발국보다 국제경쟁력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일본의 소니(SONY)는 일본에서는 TV를 한 대도 만들지 않는다.

만들어 봐야 인건비 등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소니는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동남아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을
세계도처에 팔고 있다.

월등한 자본.기술을 현지의 값싼 노동력 및 자원과 결합시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얘기다.

결국 우리의 진정한 경쟁상대는 종래의 선.후진국이 아니다.

저개발 국가에 진출해 있는 선진국의 자회사나 손자회사다.

이들 다국적 기업이 만들어낸 무국적 상품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수십년간 흑자를 유지해 왔던 대미 무역마저 적자로 돌아선 것도 다국적
기업의 무국적 상품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국내 시장에서도 이들 무국적 상품이 판을 친다.

국산제품에 비해 가격이 20% 정도 싼 데도 품질은 더 좋다.

이제 우리는 수출경쟁 상대에 대한 설정부터 바꿔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IMF체제에서 빠져나오려면 다국적 기업의 무국적 상품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흑자를 내고 외환을 늘릴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