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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워 프로] (91) 제5부 : <35> '대정부관련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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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7년 4월4일.

    무역위원회로 덤핑방지관세 부과신청서 한 장이 날아들었다.

    신청인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국내 대기업.

    중국 화학업체들이 푸르푸릴알코올을 덤핑으로 수출해 국내 시장을 교란
    시키고 있으니 이들에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국시장에서 짭짤한 재미를 보던 중국 푸르푸릴알코올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덤핑방지관세를 물고선 수출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때마침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적극 추진하던 중국 정부도 통상마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던 터였다.

    시노켐 산둥바오펭 바오딩 등 중국 업체들이 마침내 문을 두드린 곳은
    변호사 사무실이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표인수(40) 변호사에게 이 사건을 맡긴 것은 그가 화학
    분야를 잘 알아서가 아니다.

    사건을 한국 정부에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충분한 이해를 구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부를 잘 아는 변호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경제 부처에서 표 변호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공무원들이 특정 사안을 놓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접근 방법은
    어떤지, 논리는 어떻게 펴 나가는지를 누구보다 잘 안다.

    정부와 관련된 사안을 풀어내는데 더 없이 좋은 무기다.

    표 변호사는 국내 독점 생산업체가 중국 수출자를 대상으로 제소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덤핑 제소가 독점업체를 보호하는 데 쓰이면 자칫 독점의 폐해가 발생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품목에서 통상분쟁이 벌어질 경우 국내 생산자의
    이익에 비해 국가가 입는 피해가 너무 크다는 생각도 했다.

    조사 결과 중국업체들의 수출가격만 낮은 것이 아니라 국내 생산자의
    가격이 워낙 높다는 결론도 얻어냈다.

    그는 자료를 들고 무역위원회와 재경부를 찾았다.

    제소업체에도 충분한 설명을 했다.

    표 변호사의 완벽한 조사와 분석에 무역위원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98년 2월 제소업체가 덤핑방지관세 부과신청을 철회했고
    재경부도 신청 철회를 수락했다.

    사건은 이렇게 종결됐다.

    표 변호사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몇 안되는 변호사중 하나.

    외국에선 "조정 업무(regulatory work)"라고 불린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분야다.

    그가 대정부 관계 업무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스스로
    16년간 경제 부처에서 쌓은 경험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행시 24회인 표 변호사가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말.

    옛 상공부 사무관 시절이다.

    슈퍼 301조를 무기로 통상압력을 가해 오던 미국과의 협상에서 번번이 밀려
    나는 정부의 협상력에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전문가의 자질을 갖춰야 하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청와대 파견 근무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시라큐스 법과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따냈고 96년 6월에는 뉴욕주와 뉴저지주 변호사 자격을
    획득했다.

    그리곤 옛 통상산업부 아주통상1과장 자리를 끝으로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대정부 관계 일을 하는 변호사라면 흔히 정부와 관련한 로비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정부 관계 변호사는 정부의 일을 분담하고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함께 대변하는 업무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요"

    외국과의 통상협상, 반덤핑 사건, 공정거래관련 업무, 입법을 위한 자문
    등의 정부 업무에서 변호사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표 변호사도 산자부 법무부 등 정부 각 부처의 통상분야 업무에 자문위원
    으로 있다.

    "국제 무대에서는 협상을 통해 얻을 것이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힘만으로는 어렵지요.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수밖에요"

    전방위 경쟁 시대에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쳐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 김정호 기자 jhkim@ >


    [ 특별취재팀 = 최필규 산업1부장(팀장)/
    김정호 채자영 강현철 이익원 권영설 이심기(산업1부)
    노혜령(산업2부) 김문권(사회1부) 육동인(사회2부)
    윤성민(유통부) 김태철(증권부) 류성(정보통신부)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9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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