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부채의 사용은 기원전 1세기 원삼국시대까지 올라가며 부채의
원래 용도도 제사장(샤먼)들이 사용하는 무구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고고학지 11호에 게재할
"다호리유적 출토 부채자루(선병)에 대하여"란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창원 다호리유적 등 초기 원삼국시대 고분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 유적
에서 공통적으로 칠초검이나 현악기등 무구와 함께 부채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부채가 오늘날 무속에서 사용되는 부채의 원형으로 추정된다는 것.

이실장은 우선 88년~91년 발굴된 다호리 목관묘유적에서는 총 6자루의 부채
자루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들 부채자루는 모두 나무를 깎아 만든후 흑칠을 입힌 목태칠기로 손잡이
부분은 봉형태이며 부채머리는 가오리형을 띠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부채는 경북 경산 임당동유적과 광주 신창동 유적에서
찾아볼 수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실장은 이들 부채의 주변에 칠초검과 현악기들의 유물이 함께 나오고 있다
고 설명한다.

아울러 거울이나 방울등도 함께 나오는 것으로 볼 때 피장자가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유물은 제의기구 역할을 했으며 현악기와 부채가 함께 쓰였다면 무선의
기능도 가졌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아울러 안악삼호분이나 덕흥리고분등 고구려고분에서 엿보이는 부채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고위신분임을 나타내는 징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부채는 단순히 더위를 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검 현악기
등과 함께 제의 무의등에 사용되었던 무구였으며 위의구나 지휘를 위한
상징물로도 사용됐다고 강조했다.

< 오춘호 기자 ohc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