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펠드스타인 <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

일본경제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힘입어 일단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하반기 이후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기업과 소비자들은 경기회복을 자신하지 못하고 은행의 경영부실은 여전히
심각하다.

이는 앞으로 경제성장률이 다시 둔화되고 실업률은 더 올라갈 것임을
의미한다.

성장률을 높이고 실업률을 낮추려면 수출을 늘려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엔화가치를 낮춰야 한다.

아니면 국방비를 늘려 내수를 진작시켜야 한다.

일본기업과 소비자들이 자신감을 상실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수십년간 견고한 성장과 제로에 가까운 실업률을 누려온 일본은 90년대
내내 경기부진과 실업자 증가에 시달려왔다.

중년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의 재취업이 힘든 일본에서 기업들의 감원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당연히 일반 가정은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고 있다.

기업들은 내수위축과 이익감소로 투자의욕을 잃었다.

막상 신규투자를 하려해도 은행들의 대출거부로 자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대출을 메우느라 신규대출을 꺼리고 있다.

일본의 경제문제들은 여러 이유에서 비롯됐다.

지난 80년대 지나치게 느슨했던 통화정책으로 일본 부동산과 주식값은
폭등했다.

한때 도쿄를 팔면 미국을 사고도 남을 정도로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일본은행들은 위험성이 높은 대출을 하면서 값이 부풀어 오른 부동산을
담보로 잡았다.

또 자산의 상당부분을 주식에 투자, 문제를 증폭시켰다.

그러나 버블이 꺼지면서 4만엔에 달했던 닛케이주가는 반토막으로 폭락했다.

이 와중에 금융기관들은 무더기로 도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일본정부는 소비세를 신설,소비를 위축시켰다.

지난 97년 이후에는 동남아 통화위기로 수출마저 급감, 일본기업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그 파장은 일본경제 전체로 퍼졌다.

정부는 연기금이 고갈돼 연금지급 불능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할
정도였다.

이에따라 근로자들은 노후를 위해 소비를 더 줄였다.

경기회복을 위해 일본정부는 재정흑자 원칙을 깨고 대규모 적자예산을
편성,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이 정책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다.

대부분의 공공투자자금이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 보다는 땅을 사는 데
들어갔다.

현재 제로에 가까운 초저금리와 엄청난 재정적자는 한계에 와있다.

일본 정부는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최근의 경기부양책은 재교육과 임시고용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도 내수를 진작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쉽게 펼 수 있는 경기진작책은 각종 부동산규제를
푸는 것이다.

부동산 규제철폐로 주택수요가 회복되면 가구를 비롯한 내구재 소비도 함께
늘어난다.

또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가장 확실한 길은 정부가 국민들에게 연금계좌를 만들어준 다음 향후 연금
지급액만큼의 국채를 각 계좌에 넣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받게 될 연금이 당초 약속한 것보다 적을 수는 있어도
지급은 확실히 보장된다.

이런 "인정채(recognition bonds)"는 남미에서 사회보장정책을 개편할 때
사용돼 효과를 거뒀다.

불행하게도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부동산규제 철폐나 근본적인 사회보장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수출증대를 노려 엔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시장개입은 그러나 통화가치 급락의 소용돌이를 불러올 수 있다.

엔값이 지금의 달러당 1백20엔 안팎에서 1백50엔이나 1백80엔대로 곤두박질
친다면 한국이나 태국 등 다른 아시아국가들도 떨어지는 가격경쟁력을 만회
하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게 될 것이다.

중국도 엔화약세에 맞서 위안화를 평가절하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달러에 대한 엔화의 평가절하 효과는 반감돼 일본은 엔을 더
낮춰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엔약세는 미국기업들에 부담을 주고 미국의 대일 무역적자를 더 확대시킬
것이다.

이는 워싱턴과 도쿄간 무역마찰을 불러올 게 분명하다.

일본이 경기회복을 위해 쓸 수 있는 다른 카드는 군비확장이다.

워싱턴 입장에서는 이 쪽이 더 나을지 모르나 아시아국가들로선 불안할
것이다.

일본은 "GDP의 1%이내"라는 군비지출 규정을 깰 수 있다.

군비지출은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참여할 수 없는 기업들도 혜택을 받게
된다.

군비확대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보다 효과적으로 수요를 진작시킬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일어난 아시아 각국의 군사행동은 일본 유권자들을
군비확장 지지자로 만들었다.

일본인들에게 북한이 일본까지 닿는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충격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이나
중국도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일본인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일본군과 정치지도자들은 일본도 핵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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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 하버드대 경제학교수의
칼럼으로 경제뉴스 전문통신인 AP다우존스가 최근 보도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대통령 경제정책 자문위원장을 역임했다.

< 정리=김용준 국제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