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동 <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장 >


코스닥시장의 주가가 지난 수개월간 두배이상 급등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벤처기업의 육성을 주요시책의 하나로
내세웠을 때만 해도 환경은 척박하기만 하였다.

대다수의 벤처기업은 다른 중소기업과 별차이 없이 자금난에 시달려야 했고,
이들 기업에 돈을 대줘야 할 창업투자사들은 자금고갈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 사정이 많이 호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가가 급등한 기업은 물론이고 그런 기업에 투자한 일부 창투사까지 해당
주식의 일부를 매각해 회수한 자금을 다시 다른 벤처에 투자할 수 있는
선순환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과 부산 등 전국 각지에 창업초기의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역별
엔젤클럽이 속속 활동을 시작하는가 하면 대학교수와 동창 선배로 구성된
학교별 엔젤클럽도 발족하고 있다.

성공한 벤처기업이 다른 창업기업에 투자하여 엔젤이나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하는 경우도 낯설지 않다.

중소기업청에 의하면 정부가 확인한 벤처기업의 수는 5월말 현재 3천1백개를
넘어섰다.

이들 기업은 작년 불황중에도 평균 22%의 매출증가율을 나타냈다.

최근엔 신설법인수가 월 2천5백개가 넘는 등 벤처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창업이 활성화되고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등을 통한 제도적 지원, 창업자금 등 금융지원이 벤처기업가의
노력과 합쳐져 이러한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이러한 벤처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우리의 기업문화를
개선하고 국민경제의 중추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방향에서 개선책이
필요하다.

첫째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은 꿔주는 융자가 아니라 지분에 참여하는
투자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이는 경영에 실패한 창업투자사들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벤처는 말 그대로 실패할 확률이 높은 모험기업이다.

성공할 확률은 10%도 안될 것이다.

대신 성공하는 경우엔 투자자본의 수십, 수백배 이익도 거둔다.

이러한 고위험, 고수익 기업에 자금을 대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채권자로서가
아니라 주주로서 참여해야 벤처캐피털이든 엔젤이든 지속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다.

벤처성공률이 10%, 융자해 주는 경우 금리가 10%, 성공벤처의 수익률은
20배, 회수기간은 3년이라고 하자.

10억원씩 10개 벤처기업에 모두 1백억원을 꿔줄 경우 3년뒤에는 9개기업으로
부터 원리금을 모두 떼이고 한 기업에서만 13억원을 받게 돼 돈을 꿔준 쪽도
결국 망한다.

반면 10억원씩 열개 기업에 모두 투자했다면 성공벤처의 주식가치가
2백억원이 되므로 그것을 현금화해 벤처캐피털은 규모를 늘리면서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벤처캐피털산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벤처기업을 돕자면 투자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

미국과 대만은 그렇게 하여 성공했고 우리는 과거에 그렇지 못하여 몇년간
세월을 허송했다.

둘째 실패한 벤처기업인 중에서 옥석을 제대로 가려내야 한다.

벤처란 90% 실패할 확률이 있는데도 벤처캐피털이나 엔젤이 실패한 경험이
있는 기업인을 무조건 지원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수많은 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모험기업을 하다보면 한번쯤 실패할 수도 있다.

그 실패가 본인에 귀책사유가 있는지, 그렇다 하더라도 실패경험에서
기업인이 교훈을 얻었는지를 자금제공자들이 면밀히 평가해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단 한번의 실패도 용납 안한다면 벤처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결여된 것이고,
그러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벤처를 도울 수는 없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벤처에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창업준비기나 초기에 영업, 자금관리 등 경영자문을 제공해 실패확률을
낮추는 노력이 선행되면 금상첨화다.

셋째 미국에서처럼 대학과 연구소의 벤처지원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대학이 그런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이는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셈이다.

이렇게 벤처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금제공자들의 적절한 선별능력과
투자전략이 관건이라 하겠다.

건전한 벤처문화가 정착된다면 정부의 직접지원은 점차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대학에서 십만명 이상의 학생이 고시와 자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 10분의1이라도 전공을 활용하여 창업에 관심을 갖고 필요한 교육을 받고
준비한다면 국민경제에는 훨씬 더 보탬이 될 것이다.

사농공상의 낡은 틀을 깨고 21세기에는 벤처정신으로 학교문을 나서는
졸업생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한국인의 기질로 능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