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가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 채 91년 소련을 필두로 무너지기 시작한
원인은 더 벌고 더 잘 살아 보겠다는 인간본능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도 한때는 힘을 모아 동서냉전의 축을 이루고 우주선도 쏘아 올리고
빈곤국을 돕고 국지전도 지원했다.

그런데 그게 모두 허세였다.

버블을 정리하고 보니 기초생필품마저 깡말라 버린 산업체제였다.

이념이 사라진 공간을 국민여론이 대체하고 정치가는 빵과 생활향상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래서 후발 자본주의 방식화 국가들은 지금 생산양식의 전환에 매달리고
있다.

중국은 이내 식량문제를 해결했고 IMF위기 전에 내가 만난 인사들은 넌지시
이제 곧한국과 대등해지지 않겠냐고 물어 왔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인류사이래 우월성이 입증된 탁월한 경제체제다.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보장하고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제도아래서 대소 경제
주체는 각기 혼신을 다하게 마련이다.

이래서 경제가 성장하고 자본이 축적된다.

승리한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더욱 고취시키려면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그 사회 사조가 용인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재벌들의 행태가 진즉 국민정서에서 궤리됐지만 "특금족"을 연일 특집으로
다루고 옷 얘기가 국가원수의 외교행사보다 더 대접받는 시류사조의 뒤안에는
부를 시기하고 다같이 대충 살아야 한다는 평등주의가 느껴져서 두렵다.

부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서구선진국의 자본축적과정을 들여다본다면 부의 성질이 반드시
맑고 투명한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월2백만원 소득자와 2천만원 소득자의 쓰임새도 당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해야 한다.

자동차광인 부호가 고급차를 다섯 대 가지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바라보지
못하니 국산차 만든다고 나서서 결국 수조원 부채를 국가에 남긴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하는 심사로는 자칫 학교평준화와 같은 하향평준화
논리를 일반화할 우려가 있다.

우리가 국부의 신장을 진정 원한다면 자본주의의 결과물로서 개인소비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