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키바라 에이스케 < 일본 대장성 재무관 >


일본은 그동안 외국 언론과 경제학자들의 입방아 대상이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일본이 그들이 속한 나라와 명백히 다른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외국인들에게 공손하고 관대한 일본의 국민성이 더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일본사람들은 편견으로 가득찬 외국의 설익은 분석에 대해서도 쉽게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일본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이론들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볼 필요가 있다.

10여년전 제임스 팔로나 카렌 판 울페렌 같은 수정자본론자들은 일본의
경제적 힘은-당시만 해도 영원할 것처럼 보였던-시장에 경도되지도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일본 나름대로의 특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들어 루디거 돈부시 같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왜곡된 정보에 기초해
일본경제가 태생적으로 허약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수정자본주의자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의 관점이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상반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일본이 비서방권 국가로는 유일하게 기적적인 성공을 거둔 선진산업
국가라는 사실에 곤혹스러워 한다.

그들은 임의로 뽑은 자료나 정보에 근거해 일본을 극단적으로 일반화한다.

돈부시가 지난 5월1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의 99년 자료를 인용해 일본의 총 공공부채가 국내
총생산(GDP)의 1백30%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를 근거로 일본정부의 연금 부담액을
현재가치로 환산할 경우 GDP의 1백7%나 된다고 언급했다.

나아가 일본이 전후 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나 그가 의식적으로 빠뜨리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일본의 순 공공부채가 GDP의 37.9%에 불과하다는 IMF의 동일한 99년 보고서
내용이다.

이는 선진7개국(G7)중 가장 낮은 수치다.

여기에 비해 미국의 99년 순공공부채는 GDP의 45.7%이며 이탈리아는
1백9.3%나 된다.

OECD의 연금관련 수치도 돈부시 교수가 주장한 GDP의 1백7%가 아니다.

장래 연금 부담액도 연금시스템이 변화되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다 객관적으로 일본경제의 현상을 진단해 볼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는 거품이 붕괴된 이후의 지난 7~8년을 찬찬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경기침체가 7~8년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일본경제는
실제로 지난 95년과 96년에 회복세를 보였다.

95회계연도와 96회계연도에 경제성장률은 각각 3.1% 및 4.7%였다.

특히 96년의 성장률은 G7중 최고였다.

97회계연도에 일본정부는 9조엔(GDP의 2%가량)의 경기부양자금을 삭감했다.

회복세로 접어든 경제가 97회계연도 2.4분기의 경기를 떠받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97년7월 촉발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일본의 전체 금융시스템
에 전대미문의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민간부문에서부터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예금인출 사태가 초래됐으
며 특히 은행간 금융거래시장은 완전히 마비됐다.

돈부시가 98년2월 개최된 스위스 다보스경제포럼에서 일본경제를 가리켜
"거의 절반은 죽은 목숨"이라고 지적한 것은 전적으로 옳았다.

금융위기는 98년 말까지 지속됐다.

일본 정부는 이때 은행부문에 투입하기 위해 60조엔(GDP의 12%)에 달하는
공공자금을 비축했다.

97년11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아금융위기는 99년 1.4분기에 와서야
진정됐다.

주식과 국채시장이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회복됐으며 작년 여름 달러당
1백50엔 직전까지 치솟았던 엔.달러 환율도 1백20엔대 근처에서 안정을 찾고
있다.

금융위기 후의 시나리오는 어떻게 되는가.

솔직히 이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본경제가 얼마나 기초체력을 회복할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일본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아시아의 금융위기뿐 아니라
일본의 금융위기도 끝났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일본경제의 저력과 회복시기를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선 두 가지 측면을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소비자와 기업의 신뢰다.

비록 일본식 방법이긴 하나 금융부문을 포함한 기업의 구조조정은 신속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주식시장, 나아가 부동산시장의 활기로 이어질 것이다.

일본정부는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개인소득 및 소비자
경기신뢰도 저하와 같은 부정적인 파장도 충분히 고려해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전례가 없는 수요측면의 경기진작정책이 시행되고 있는 것은 이같은 부작용
을 감안한 것이다.

최근들어 오부치 게이조 내각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오부치 내각은 지금의 과도기를 헤쳐나가 올해말이나 2000년께는 강력한
경기회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이 내용은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대장성 재무관(차관)이 최근 미국
경제뉴스전문 통신사인 AP다우존스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이다.

< 정리=김재창 국제부기자 char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