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7일엔 유로당 1.04달러까지 급락해 창설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유럽 단일 통화로 모습을 드러냈던 지난
연초의 시세가 1.1828달러였던데 비하면 5개월만에 12%나 폭락한 것이다.

달러에 필적할 만한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라진지
오래고 최근에는 유로화가 과연 단일통화로 존립할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제기되는 정도다.

유로화의 급락세는 이날 EU재무장관들이 이탈리아의 재정적자 허용폭을
GDP의 2.4%까지 확대해주기로 결정한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었다는 얘기지만
침체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저금리 정책을 추진해온
것도 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유로랜드 전체의 올해 GDP성장률 전망치는 벌써 2%이하로 하향 조정되었거
니와 주축국인 독일만 해도 내년이면 재정적자가 GDP의 2.5%를 넘어설 것이
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유럽 지역 전체가 부진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소보 사태는 군사비 부담을 늘린 끝에 유로랜드 성장률을
0.1~0.2%까지 떨어뜨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있다.

일부 비관적 견해는 멀지않아 유로에서 이탈하는 국가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유로화 약세뿐만 아니라 최근들어서는 엔화 시세가 급등락하는 등
국제금융시장 전체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와 미달러화를 제외하고는 다른 선진국들의 경제와 통화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경제가 그나마 세계 시장의 최종소비자(consum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해내고 있을 뿐 일본과 유럽이 모두 디플레적 악순환에 빠져 이렇다
할 반전 조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의 이같은 국제 금융시장 동향은 우리나라등 금융위기를 겪었던 국가
들의 향후 진로에도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할 것이다.

미국 경제가 그나마 버팀목이지만 27일 발표된 1.4분기 성장률이 4.1%로
예상(4.5%)보다 낮아졌고 내구소비재 주문등 경기지표들이 4월 이후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고 보면 우려되는 대목도 적지않다.

정부로서는 세계경제가 동시 부진의 늪에 빠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탄력적인 금리및 외환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경기회복 추세를 확실히 해두어야 하겠고 급변하는 국제외환시장에
서 원화환율이 균형감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안전판을 구축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