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호 < LG경제연구원 원장 >

경기가 상승하고 있다.

미국주가의 폭락과 같은 외부로부터의 큰 충격만 없다면 금년중 우리 경제는
6%에 가까운 성장, 2백억달러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 2%내외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수치들이 우리 경제가 건강해졌다거나 국제 경쟁력이 높아졌다
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경제가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사실이나 외환위기를 맞게 한
구조적 문제점들은 아직도 상당수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이번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절실히 깨달은 것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이루는 데는 오랜 시간과 고통스러운 노력이 요구되지만 경제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란 점이다.

단 1년만에 국민 1인당 소득은 30%가 넘게 줄어들었고 실업률은 2.6%에
서 8%가 넘게 치솟았으면서 1백50만명이 넘는 신규 실업자가 생겼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와 관련,실업대책을 위해 10조원이 넘는 재정자금을 물
붓듯이 쏟아 부으면서도 우리의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사회
안정없는 경제성장과 경제의 효율성 확보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IMF사태를 계기로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필요성은 명백해
졌다.

첫째, 사회복지 제도를 어느 수준까지 확충할 것인가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모을 필요가 있다.

복지 국가는 모든 현대 국가가 지향하는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비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북유럽에서 보듯이 지나친 복지정책은 국민들을 나태하게 하고 경제의
활력을 앗아간다.

사회복지 정책을 소홀히 하면 자본주의의 약점인 지나친 부의 편중현상이
사회불안, 체제불안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효율적인 경제,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를 우리가 목표로 한다 할지라도
두 가지 목표 사이에는 상충관계가 존재한다는 것, 이를 함께 이루려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효율적인 경제,성장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경제
원리"가 적용되어야 하고 더불어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장
경제원리와는 다른 "나눔의 원리"가 적용돼야 한다.

이 두 원리를 어떻게 나누어 적용하고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우리 사회가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얼마만큼 돌볼 것인가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합의가
필요하다.

또 국가가 돌봐야 할 사람들의 대상을 넓힐수록 소득에서 떼어가는 세금도
급속히 늘어난다는 불가피성에 대해서도 국민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생산은 시장원리에 충실하되 분배는 나눌수록 사회적 명예와 존경이 뒤따
르는 "보람의 원리"가 적용되는 우리 나름의 경제 모델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둘째, 국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하나의 대의기관이라 할 수 있는 노사정
위원회를 꼭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가신 것은 아니지만 이왕 설치된
위원회니 만큼 그 기능을 정상화시켜 생산적인 노사관계를 만들어 내야 한다.

구조조정기는 경쟁력 향상은 물론 합리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노동행정의 원칙과 일관성을 유지하여 노동시장에서도 시장경쟁원리가
작동되도록 하고 노사간에 합리적인 게임의 룰을 정립해야 한다.

아울러 실업문제 해결에 언제까지나 막대한 재정자금을 투입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취업유인을 높이는 생산적인 실업대책 등 정책의 효율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4대 복지보험 등 각종 연금의 총체적 재정비가 필요하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는 외형적으로는 틀을 갖추었으나 사회보장 관리운영비
의 과다 및 체계성 결여 등으로 복지 전달체계가 비효율적이고 내실은 빈약
하여 심각한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시기가 문제일 뿐 지금대로 가면 모든 연금의 파산이 명백한 만큼 각종
연금의 요율과 혜택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의 확대시행과 의료보험의 통합을 둘러싼 갈등은 봉급자와 자영업자
간 부담의 공정성을 둘러싼 시비다.

공정성 문제에 이해할 만한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확대와 통합 시기를
재조정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 볼 일이다.

넷째, 단호하지만 현실성 있는 환경정책을 기대한다.

맑은 물, 맑은 공기는 좋은 삶의 필수 요소다.

또 세계기후협약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감축은 중요한 국가적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괴리된 환경정책은 실효성도 문제이고 수많은 범법자를
양산하며 부정부패의 단초를 제공한다.

사회복지분야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시급성이 떨어지고 경제의 효율성과
맞부딪쳐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또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고 가치관이 많이 작용하는 분야이다.

그래서 재원 확보와 조정이 쉽지 않다.

새로운 경제팀에 국민합의 도출 능력, 경제의 효율성과 복지의 조화능력,
정책의 효율성을 담보해내는 우수한 집행능력을 기대해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