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미국에도 할 말은 해야 .. 이제민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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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민 < 연세대 교수 / 경제학 >
미국대사관 뒷골목에 암표상이 성업중이다.
미대사관이 비자에 붙이는 인지 판매권을 1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한미은행
에 독점시키는 바람에 비자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그곳까지 찾아가기보다
암표상으로부터 프리미엄을 주며 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 한빛은행과 외환은행이 있지만 그곳에서는 인지를 팔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신공항건설공사 입찰에서 외국기업에 대해 차별했다고 한국을
정부조달협정 위반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런 차별관행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을 모두 미국계 은행이 인수한 뒤에나 바꿀 것인가.
비자의 인지 취급료가 큰 금액이 아니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은행의 미국 지분도 설립 당시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50%를 출자
하였지만, 지금은 17% 정도밖에 안된다.
미대사관은 별 실속도 없는 행정상의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 예일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현재 미국의 행태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는 일관성을 결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은 환란 전 한국이 대미적자를 내고 있을 때는 공정무역이 더 중요
하다고 하더니 환란 후 흑자를 내니 국제수지가 문제라는 태도다.
환란이 일어나는 데는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원인이 되었지만, 환란이 터진 후 경을 친 것은
전자뿐이고 후자는 미국과 IMF의 등뒤에서 고금리에다 정부보증까지 챙겼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자국의 노동시장은 닫아 걸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장에서 개방체제 자체의 이익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2차대전후 개도국중에서 먼저 개방
체제를 추구한데 힘입은 것이다.
최근에도 IMF 체제하에서 과거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은행을 비롯한 일부 금융기관을 외국인이 소유해서 관치금융의
폐해를 근절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쁠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같은 나라에 있어 개방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개방체제에서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다.
그 규칙이 선진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모순에 가득 찬 것이라 하더라도
북한이나 미얀마처럼 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그로부터 이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다.
한국은 지난 60~70년대 대부분의 개도국이 "제3세계의 단결"과 "신국제질서"
를 외치고 있을 때 선진국이 설정한 기존질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
함으로써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제3세계의 대변자를 자처하던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도 뒤늦게 개방체제
의 이익을 인정하고 한국을 모방하게 되었다.
현재 아시아의 경제위기 하에서 한국이 택하고 있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그 때의 재판이다.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가 선진국이 설정한 게임의 규칙이 부당하다고 외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미국과 IMF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모범생이 되는 것을
지향해 왔다.
이것이 틀린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 같이 복잡한 지정학적.지경학적 구도하에 있는 나라로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60~70년대에도 한국이 선진국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한국의 철강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이 오늘날의 모습이나마 갖추게 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개방체제를 단순히 추종하지 않고 그것이 제공하는
운신의 폭을 활용한 결과이다.
지금의 세계체제는 그때 만큼의 운신폭을 주지 않고 IMF 체제하에서 그
폭은 더욱 좁지만, 지금이 과거의 제국주의시대가 아닌 한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을 선택할 여지는 있다.
더욱이 지금의 세계체제는 단순히 추종하기에는 너무 위험요인이 많다.
단기자본이동을 자유화해 놓고 구조개혁만으로 환란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조개혁이 시간이 걸리는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무리이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자유치도 환란하에서 목을 매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그것이 환율을 압박하여 경상수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환란이 조금 나아지니까 딴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의 덜 떨어진 세계화는 재난으로 끝났고, "국민의 정부"는
처음부터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조금 나아진 지금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
미국대사관 뒷골목에 암표상이 성업중이다.
미대사관이 비자에 붙이는 인지 판매권을 1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한미은행
에 독점시키는 바람에 비자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그곳까지 찾아가기보다
암표상으로부터 프리미엄을 주며 사고 있는 것이다.
바로 옆에 한빛은행과 외환은행이 있지만 그곳에서는 인지를 팔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신공항건설공사 입찰에서 외국기업에 대해 차별했다고 한국을
정부조달협정 위반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놓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이런 차별관행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의 은행을 모두 미국계 은행이 인수한 뒤에나 바꿀 것인가.
비자의 인지 취급료가 큰 금액이 아니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한미은행의 미국 지분도 설립 당시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50%를 출자
하였지만, 지금은 17% 정도밖에 안된다.
미대사관은 별 실속도 없는 행정상의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한 예일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현재 미국의 행태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는 일관성을 결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은 환란 전 한국이 대미적자를 내고 있을 때는 공정무역이 더 중요
하다고 하더니 환란 후 흑자를 내니 국제수지가 문제라는 태도다.
환란이 일어나는 데는 한국 기업과 금융기관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외국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도 원인이 되었지만, 환란이 터진 후 경을 친 것은
전자뿐이고 후자는 미국과 IMF의 등뒤에서 고금리에다 정부보증까지 챙겼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해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하면서
자국의 노동시장은 닫아 걸고 있다.
물론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장에서 개방체제 자체의 이익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한국의 "경제기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2차대전후 개도국중에서 먼저 개방
체제를 추구한데 힘입은 것이다.
최근에도 IMF 체제하에서 과거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구조조정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은행을 비롯한 일부 금융기관을 외국인이 소유해서 관치금융의
폐해를 근절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쁠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 같은 나라에 있어 개방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개방체제에서 지켜야 할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다.
그 규칙이 선진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모순에 가득 찬 것이라 하더라도
북한이나 미얀마처럼 되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그로부터 이탈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어떤 전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한국인의
몫이다.
한국은 지난 60~70년대 대부분의 개도국이 "제3세계의 단결"과 "신국제질서"
를 외치고 있을 때 선진국이 설정한 기존질서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용
함으로써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제3세계의 대변자를 자처하던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도 뒤늦게 개방체제
의 이익을 인정하고 한국을 모방하게 되었다.
현재 아시아의 경제위기 하에서 한국이 택하고 있는 방향은 기본적으로
그 때의 재판이다.
말레이시아 같은 나라가 선진국이 설정한 게임의 규칙이 부당하다고 외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미국과 IMF가 주도하는 세계화의 모범생이 되는 것을
지향해 왔다.
이것이 틀린 전략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 같이 복잡한 지정학적.지경학적 구도하에 있는 나라로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불가피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60~70년대에도 한국이 선진국의 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한국의 철강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이 오늘날의 모습이나마 갖추게 된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개방체제를 단순히 추종하지 않고 그것이 제공하는
운신의 폭을 활용한 결과이다.
지금의 세계체제는 그때 만큼의 운신폭을 주지 않고 IMF 체제하에서 그
폭은 더욱 좁지만, 지금이 과거의 제국주의시대가 아닌 한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을 선택할 여지는 있다.
더욱이 지금의 세계체제는 단순히 추종하기에는 너무 위험요인이 많다.
단기자본이동을 자유화해 놓고 구조개혁만으로 환란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구조개혁이 시간이 걸리는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무래도 무리이다.
인수합병을 통한 외자유치도 환란하에서 목을 매다시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그것이 환율을 압박하여 경상수지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에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환란이 조금 나아지니까 딴 생각하자는 것이 아니다.
"문민정부"의 덜 떨어진 세계화는 재난으로 끝났고, "국민의 정부"는
처음부터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조금 나아진 지금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5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