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밀레니엄이 주는 커다란 변화중 하나는 주생활에서 나타난다.

사이버 사회의 도래가 주거문화는 물론 주택양식까지 바꿔 놓는다.

지구촌 구석구석이 컴퓨터망으로 연결됨으로써 "도시로의 집중화" 필요성이
사라진 것.

네트워크사회가 기존의 도시개념을 파괴하는 셈이다.

IMF 탈출에 몸부림 치는 한국에선 이같은 변화가 더욱 압축적으로 진행중
이다.

이른바 "한국적" 경제시스템이 빠르게 글로벌스탠더드로 편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와 정보화물결은 주생활에도 어쩔 수 없는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시장 상황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변화의 핵심 키워드는 "소유에서 사용으로" 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변화의 스펙트럼은 여러가지 양상으로 퍼진다.

우선 실수요자들의 인식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부동산 신화"가 깨졌다.

은행 빚을 얻더라도 큰 평수의 아파트를 사두기만 하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이젠 "환상"으로 변했다.

한국사회의 중산층 몰락이 이를 말해준다.

실제 우리나라 중산층의 형성엔 부동산값 상승이 촉매역할을 했다.

개발시대에 부동산은 신분상승을 약속해 주는 담보물이었다.

그러나 부동산값의 급락은 하루아침에 중산층을 몰락시켰다.

시세차익은 커녕 엄청나게 불어난 빚더미에 시달릴 뿐이다.

우리 경제가 개발경제시대의 고도성장을 끝내고 안정성장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 주택공급이 거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점등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힘을 준다.

이같은 인식변화가 투영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기집(소유)이 아닌 전세
(이용)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최근들어 매매가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으나 전세값은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

"없는" 사람들의 고육지책으로 인식됐던 월세까지 새롭게 인기를 끌 정도다.

집에 들이는 돈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돈으로 재테크를 하거나 창업을 하고
있다.

개인생활에서도 "스톡"보다는 "플로"를 중시하는 결과다.

최근 분양시장의 폭발적 인기도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분양권을 전매하려는
단기투자용이란 시각이 우세한게 현실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부동산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상당수 기업들의 성장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은
부동산이었다.

영업이익은 못낸다 해도 가파르게 상승하는 부동산값은 기업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부동산값이 담보가치 아래로 떨어지면서 사정은 1백80도 달라졌다.

부동산이 많은 순서가 곧바로 망하는 순서였다.

살아 남은 기업들도 "팔리면 살고 안팔리면 죽는" 부동산 매각에 목숨을 건
생존게임을 벌이고 있다.

주생활을 담당하는 건설업체들의 영업전략도 완전히 새로워지고 있다.

"만들면 팔린다"는 공식은 옛날 얘기다.

"미분양=부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현실화된 지 오래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분양은 이제 한마디로 전쟁이다.

상대방을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파격적인 분양조건은 그래서 나온다.

계약금을 대폭 줄이거나 무이자 융자는 "예삿일"이다.

입주때 계약자가 해약을 원하면 불입금액 전액을 이자까지 붙여 환불해
주기도 한다.

보험설계사나 자동차영업사원처럼 수요자를 찾아다니며 아파트를 파는
새로운 직종도 등장했다.

안목치수, 4베이(bay)구조, 전원아파트 등 각종 아이디어상품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정주영 현대건설 명예회장등 기업의 총수들까지 아파트분양 현장에서
판촉활동을 벌이는 상황이다.

리모델링 소호(SOHO) 부동산매니지먼트 등 부동산과 관련된 신업태도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고 있다.

외국인의 등장도 부동산시장의 틀을 바꿔 놓았다.

지난해초 부동산시장 전면개방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투자자들은 국내
부동산시장의 가격산정 기준을 새롭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객관적인 가격이 없었다.

주변이 얼마이니 얼마쯤 될 것, 곧 개발될 테니 오를 것 등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철저히 투자대비 수익개념으로 부동산 가격을 산정해
냈다.

부동산 가치산정이 "비슷한 규모인 옆건물이 5억원이니 내 건물도 5억원"
이라는 식의 거래사례비교법에서 수익환원법으로 바뀐 것이다.

수익환원법은 임대수입과 같은 현금흐름에 기초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시장의 변화는 정부의 부동산정책 틀을 새로 짜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정부정책은 "투기억제"에만 초점이 맞춰졌었다.

그린벨트와 토지공개념 제도 등은 단적인 예다.

그러나 이젠 규제완화 조치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분양가자율화 미등기전매허용 등은 과거엔 엄두도 못냈을 "혁명적인"
정책들이다.

그린벨트 대폭 해제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시장환경 변화가 정책입안자들의 철학을 바꿔 놓은 것이다.

새로운 정책틀은 앞으로의 부동산정책도 실수요자들의 매매활성화가 가장
중심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부동산 시장의 새 패러다임은 부동산 투자상품과 기법들의 혁신도 요구한다.

실제 부동산 거래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부동산 간접투자상품의 등장이다.

그동안 부동산은 자기 돈으로 직접투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증권시장의 뮤추얼펀드같은 간접투자상품이 속속 개발되고
있다.

소액자본으로도 투자가 가능해져 금융상품과의 투자게임(수익률 경쟁)이
가능해졌다.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이었던 법원 경매나 성업공사 공매 등도 일반인들의
자연스런 투자대상으로 자리잡았다.

경매의 경우 인기있는 아파트는 경쟁률이 수십대 1을 기록하고 있다.

한자릿수였던 공매낙찰률도 최근들어 50%를 넘어설 정도다.

사이버시대에 걸맞게 컴퓨터를 활용한 부동산 거래도 크게 늘고 있다.

PC통신이나 인터넷을 통해 부동산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이트가 국내에서만
벌써 1백개를 넘는다.

현재도 전세나 월세시장의 20~30%는 컴퓨터 공간안에서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만나 거래한다.

컴퓨터 거래비중은 앞으로 급속히 확대될 것이란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진단
이다.

부동산 거래를 하고 싶으면 중개업소의 문을 두드리는게 아닌 컴퓨터를
클릭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IMF 경제위기와 정보화의 물결이 가져다준 주생활의 변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으면 21세기의 새로운 밀레니엄형 인간으로 살아
남는다.

그렇지 못하면 "과거완료형"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새 밀레니엄 시대의
"원시인"일 뿐이다.

< 육동인 기자 dongin@ >

-----------------------------------------------------------------------

[ 뉴 밀레니엄 시대의 주생활 양식 변화 ]

<> 인식및 행태

- 20세기 : 소유
- 21세기 : 이용

<> 주택소유 형태

- 20세기 : 자가
- 21세기 : 전-월세

<> 정부정책

- 20세기 : 투기억제
- 21세기 : 거래활성화

<> 외국인 투자

- 20세기 : 억제
- 21세기 : 자유화

<> 기업전략

- 20세기 : 부동산보유(담보활용)
- 21세기 : 부동산매각(자금흐름 중시)

<> 투자방식

- 20세기 : 직접투자
- 21세기 : 간접투자

<> 거래양태

- 20세기 : 중개업소 활용
- 21세기 : 컴퓨터 활용

<> 가치산정

- 20세기 : 거래사례 비교법
- 21세기 : 수익환원법

<> 건설업체 분양전략

- 20세기 : 보수적
- 21세기 : 공격적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