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의 디플레이션 경향 및 부실채권
증가와 경쟁격화에 따른 은행경영 악화로 자칫 장기불황에 빠질 염려마저
없지 않다고 주장하는 금융연구원의 보고서 "최근 금융.경제 환경변화와
시사점"은 여러모로 주목할만 하다고 본다.

이 보고서는 비록 구조조정이 마무리된다 해도 기업과 금융기관의 수익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신용경색 현상이 악화돼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최악의 경우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현재의 국내외 경제상황은
유동적이며 낙관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투입해야 할 공공자금 규모에 대해 최근 금융감독
위원회 내부에서조차 이견을 보인 것도 경제상황이 불확실한 탓이 크다.
지난달 29일 국정개혁보고에서 금융구조조정자금 64조원의 부족 가능성에
대한 금감위의 견해를 묻는 김대중 대통령의 질문에 대해 윤원배 금감위
부위원장은 올들어 환율 및 금리가 안정되는 등 경제가 호전되고 있어
64조원으로도 충분하다고 답변해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바로 사흘뒤인 이달 1일 이헌재 금감위 위원장은 금융구조조정에
10조원 정도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필요할 수도 있다는 대조적인 입장을
보였다. 워크아웃 지연, 보험 종금 등에서의 추가부실 발생, 자산건전성
분류기준 개정에 따른 대손충당금 증가 등으로 최악의 경우 10조원 정도의
추가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협의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만일 성업공사의 부실채권 매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아울러 금융구조조정
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빨리 회수할 수 있다면 윤 부위원장의 답변대로 재원
부족을 피할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위원장의 지적처럼 추가자금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인하함으로써 가계와
기업의 금리부담을 낮추고 수요를 진작시키는 한편 은행에 대한 지나친
건전성 감독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금융연구원의 주장은 경청할만 하다.
물론 지금도 금리가 낮아 부동자금화 경향이 있는 만큼 금리를 추가인하
하기에 앞서 돈이 부동산투기 등으로 흘러드는 것을 예방해야 하며 건전성
감독규제도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디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고 추가부실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앞으로 상당기간은 재정.금융정책의 완화가 불가피한 만큼 은행경영진은
저금리 환경에서 수익성 향상을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하며 금융당국도
경제환경의 변화를 고려해 건전성 감독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

작년의 금융구조조정이 하드웨어에 중점을 뒀다면 금년엔 소프트웨어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김 대통령의 지적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