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 주미 한국상공회의소 회장 >


얼마전 갓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미국 유명 투자회사의 한 중역과 식사를
같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다녀온 이번 출장
길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한국 정부의 개혁노력이 생각보다 훨씬 진지했으며, 외국인 투자 제한을
거의 없애는 등 짧은 기간동안 많은 가시적인 성과를 냈음을 확인했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대한 투자를 결심하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망설여지는
요인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그가 밝힌 "서울 방문기"의 골자였다.

한국이 해외자본 유입에 대한 제한을 거의 푼 것은 사실이지만 "투자 이후"
를 보장할 만한 안전장치가 없는데 대한 불안을 말하는 것이었다.

투자자들은 투자자산의 가치상승 못지 않게 가격이 내려갈 경우에 대비한
리스크 헤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월가의 많은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중 대부분은 아직도 한국 기업들의 경영투명성에 대해서는
선뜻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 내부의 정보가 활짝 열려 있지 않은 여건에서, 일단 투자를 했는데
가격이 내려가는 경우를 당하면 이들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기관투자가들은 중장기 투자의 경우에는 해당 회사의 단기적인
주식가격 등락보다 회사의 근원적인 신용상태에 중점을 둔다.

이러한 중장기 투자에 대해 해외투자자들이 느끼는 위험을 헤지할 수 있게끔
투기가 유발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여러 금융기법을 폭넓게 개방해야 한다.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대안을 과감하게 수용하고 투자여건을 다른 선진
자본시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식투자가 이뤄진 다음 가격이 급락할 것에 대비하는 방안( short sale ),
자본투자에 대한 위험을 보완해주는 방안( equity swap ), 투자자에 대해
일정 수준의 투자 수익을 보장해주는 거래 방식( put option ) 등이 필요
하다는 얘기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최소한 도쿄 홍콩 등 아시아 역내의 선진 자본시장
수준으로 제약을 과감히 풀어야 한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각 회사의 현실에 맞추어 투자
조건을 유연성있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상태로는 해외에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많은 중견 기업
들의 자본유치가 극히 어려울 것으로 우려된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기업의 부채비율을 연말까지 2백%로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또 이를 반드시 유상증자나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달성토록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도 국내기업과 해외 투자자들이 리스크 헤징을 포함한 제반
자본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장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런 조치가 없이 무리하게 부채비율을 낮추도록 하다 보면 기업의 재무
구조가 오히려 불건전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미국에서는 기업의 주된 자금 원천이 은행에서 증권시장으로 옮겨진지
오래다.

다시 말해서 기업의 경영활동을 지원해 주는 자금의 원천이 차입( debt
financing )에서 자본유치( equity financing )로 이동했다.

자본시장은 미국에서 기업경영의 젖줄이자,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수 있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도 하루빨리 이러한 자본시장을 키워야 할 것이다.

특히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자본시장의 활력과 규모를 확대시켜 건전한
기업자금의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외국인 투자자들이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방안을 제한하는 한
선의의 많은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을 멀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은 소수의 대형 투자자들만이 자체의 강력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바탕
으로 투자하게 된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소수 투자자들의 자본 영향력에 의존하게 된다.

그만큼 기초가 취약해질 게 뻔하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중장기 투자에 따른 리스크
헤지의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건전한 자본시장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소규모의 해외 투자자로부터
대형 투자자에 이르기까지 두터운 층의 투자자들을 폭넓게 확보해야 한다.

단기와 중장기 투자를 조화롭게 유치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자본자유화 조치와 더불어 해외 투자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투자가치를 보존할 수 있게끔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여건을 서둘러 마련
해야 명실상부한 투자자유화가 이뤄졌다고 할 것이다.

그 방편으로 미국 EU(유럽연합) 등 선진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의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반 제도에 대한 검토가 요망된다.

그저 자본시장을 개방했다고 해서 외국자본이 저절로 들어오지는 않는
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4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