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재무구조개선 성과가 지지부진하다고 판단한 정부가 다시 채찍을
들 것 같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어제 있은 국정개혁보고에서 경제여건
이 다소 호전되자 기업들이 경영권에만 집착하고 정작 시급한 구조조정은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엄중 경고하고 나섰다. 이어서 그는 자산재평가는
물론 계열사간 출자.매각, 현물출자 등 일체의 편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올연말까지 부채비율 2백%를 반드시 달성하도록 분기별 이행상황을 철저히
점검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기업 재무구조개선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라는 이
위원장의 지적대로 그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부는 재무구조개선이 기업 및 우리경제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선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기업들이 기울인 그동안의 노력은 인정해줘야
한다. 대출연장 또는 이자경감 같은 혜택만 누리려 하고 경영권에 집착한
나머지 출자전환 조차 소극적인 기업들이 일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실제로빅딜의 경우처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에는 노조의 반발 등과
같은 장애요인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이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만은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지난 28일 발표한 주채무계열 현황에서도 나타난다.
즉 은행빚이 2천5백억원 이상인 계열기업군인 주채무계열 수가 지난해
66개에서 올해에는 57개로 줄었고, 이들의 은행빚이 지난해말 현재 1백조
1천4백60억원으로 1년전에 비해 21조6천4억원이나 줄었다.

같은 기간중에 5대그룹(자산기준)의 은행빚도 23.9%나 줄어든 50조5천3백
63억원으로 감소했다. 물론 은행빚은 줄었지만 투신 증권 보험 종금 등
제2금융권 및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통한 빚은 오히려 늘었다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빚을 갚으려다 보니 발생한 불가피한 현상일뿐
시간이 갈수록 자산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한 재무구조개선이 성과를 보일
것으로 기대한다. 상장기업들은 이미 지난해 9조4천6백31억원, 올해 1.4분기
에 3조원을 유상증자했으며 올해안에 약 30조원을 유상증자할 계획이다.
그 결과 업종성격상 부채비율을 낮추기 어려운 5대그룹의 종합상사들조차
지난해말 부채비율이 평균 416.26%로 1년전에 비해 100%포인트 가까이 떨어
졌다.

정책당국은 자산재평가나 현물출자 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업종은 성격상 부채비율을 낮추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으며 단기간에 무리하게 부채비율을 낮출 경우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 재무구조개선정책도 완급을 조절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