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지 말고,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인용함으로써 유명해진 이 말은, 전.후반부
모두 그럴듯하게 들리기는 하나, 자유국가의 시민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국민과 국가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나타내지는 못한다"

-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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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연설문을 읽고는 "그것 참 옳은 말인데 왜 시비를 걸까"하고
반문하기 십상이다.

필자도 이 주장을 처음 대했을 때 "참된 국민이라면 국가를 위해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란 생각에서 프리드먼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책을 주의깊게 읽고 그 사상을 이해하면서 필자 스스로도
케네디의 말이 그릇된 것임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케네디의 말은 전.후반부 모두 틀린 것이다.

"나라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지 말라"는 것은 국가란
전지전능한 존재라서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다는 착각에
바탕을 둔 것이므로 틀렸다는 얘기다.

"내가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은 국민을
국가를 위해 봉사해야 할 시녀의 위치로 격하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옳지 않다.

참된 자유인이 물어야 할 것은, 그와 그의 동료들이 각자의 의무를 다하는
가운데 개인적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자유사회를 건설함에 있어 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라고 프리드먼은 주장한다.

또 국민이 세운 정부가 오히려 개개인의 자유를 짓밟는 억압적인 존재로
변모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라고 덧붙인다.

프리드먼은 20세기 경제학계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자유주의자다.

평생에 걸쳐 개인적 자유에 바탕을 둔 자유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해 학문적
정열을 불태운 경제학자다.

그에겐 "흔들림 없는 자유주의자" "자유경쟁체제의 굳건한 옹호자" "통화
주의의 대부" "작은 정부론의 기수" "반 케인스학파의 창시자" 등 다양한
이름이 따라다닌다.

1912년 뉴욕 시에서 출생하여 인근 뉴저지의 러커스 대학을 다녔다.

시카고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얻은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5년부터 10년간 재무부, 국립자원위원회, 전국경제연구원에서 근무했다.

1946년에 시카고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약 30년을 재직하면서 자유주의 시장
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시카고학파의 대부가 되었다.

1977년에는 떠오르는 새 별인 루카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시카고대학
을 떠나 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에도 여러 차례 다녀갔다.

프리드먼의 자유주의 경제사상은 60년대까지만 해도 광야에서 외치는 외로운
소리에 불과했으나 70년대초부터 점차 많은 수의 추종자를 얻기 시작했다.

90년대에 이르러선 서구경제학자의 다수를 자유주의자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갖게 됐다.

8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 걸쳐 일어난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시장으로
의 회귀를 목표로 하는 자유주의 경제혁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을
제공한 것도 그의 사상이다.

요즘 일부 학자들이 "신자유주의"라는 정체도 명확하지 않은 사상을 매도
하면서 프리드먼을 깎아내리기 일쑤인데, 이는 그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반 자유주의자의 어리석음일 뿐이다.

먼저 자본주의와 자유를 비롯한 그의 저서들을 정독한 다음에 비판에 나서는
것이 바른 순서일 것이다.

< 이지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jisoon@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