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인협회 사무국장 시절 ]

내각 기획통제관직을 그만 둔 후 "사상계"에서 의뢰받은 원고를 쓰고 지낼
무렵이던 62년 9월말께 소설가 김성한씨가 불쑥 전화를 해왔다.

한국경제인협회에 사무국장을 맡아달라는 권유였다.

그동안 회장을 맡아온 이병철 삼성창업주가 그만 두고 대한양회 이정림
사장이 취임해 나와 같이 일하고 싶어한다는 이야기였다.

김성한씨는 이전에도 두번씩이나 같은 자리에 나를 천거했었다.

이번에는 권유 강도가 자못 달랐다.

10월12일 경제인협회 사무실에서 이정림 회장, 최태섭 부회장(한국유리창업
주) 이한원 부회장(대한제분 창업주) 등을 만났다.

그런데 회장단이 나에게 주는 첫번째 과제는 뜻밖에도 "정치 자금"에 관한
것이었다.

이 회장은 부탁조로 말을 건넸다.

"김 국장, 제발 앞으로 우리 경제인들이 정치자금을 내도 형무소에 가지
않도록 해주시오. 어떤 정부건 정치하려면 돈이 들것이오. 우리 경제인들이
돈을 안내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돈 내고 뺨맞는 수모는 제발 없게
해주시오"

신임 사무국장을 앞에 두고 경제 문제가 아닌 정치자금 문제를 꺼내는
바람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한편 가슴도 찡했다.

"얼마나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으면..."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때 이 회장의 눈에는 물기까지 맺혀 있었다.

나는 사실 취임할 때까지 경제인협회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 회장도 그때까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민간 경제계와 관련된 일은 처음이었지만 곧바로 일을 꾸며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떤 조직, 어떤 환경에서건 "일하는 사람이 주인"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당시엔 산업개발위원회에서 경제개발 3개년 5개년 계획을 작성하면서,
내각 기획조정관직을 수행하면서 이런 믿음이 더욱 굳어져 있을 때다.

어린 시절에 읽은 "알렉산더대왕"의 한 구절이 오늘까지도 내 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강한자, 내 뒤를 차지하라"는 구절이다.

고대 희랍에서 지중해 제국,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 서부까지 정복해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이 마지막 남긴 말이다.

나는 그의 유언을 "일을 꾸미는 자가 주인이다"라고 풀이해 지금도 신조로
삼고 있다.

사무국장이 되면서 내 생활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업무를 파악하는 동시에 회원사를 찾아다녀야 했고 신문사와 유관조직도
방문했다.

사무국 업무는 직원들과 토론을 벌이는 방식으로 꾸려나갔다.

당시 경협 사무국 직원이래야 총무부장 윤태엽(후에 상근부회장.작고)
기획과장 원종훈(후에 중앙일보 사장.작고) 조사과장 배한경(현 서울여대
교수) 섭외.홍보과장 윤병철(현 하나은행 회장) 등 외에 한 두명 더 있을
정도였다.

이들은 처음엔 업무를 토론식 의견교환으로 정하는데 대해 생소함을 느끼는
듯 했다.

그러나 곧 익숙해져 토론을 할 때마다 좋은 안들이 속속 제출됐다.

참여도도 높았고 집행에 정확성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이 바쁜 와중에 또 11월에는 영국에 가야 했다.

사무국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해외출장을 가게 되니 사무국과 회장단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영국정부와 몇 개월전에 약속한 일이어서 연기할 수도 없었다.

11월초 사무국 직원들에게 신년도 사업 대강과 분기별 계획을 구상하라고
지시한 뒤 영국 출장길에 올랐다.

일행은 네명이었다.

정인욱 강원산업사장(현 강원산업 명예회장) 이정환 농협회장(현 금호석유
화학 명예회장) 오정근 최고위원(작고)등이 나와 동행했다.

"대영제국 여왕폐하의 빈객"(Her Majesty, the Queen''s guest)으로 가는
지라 영국 정부는 극진한 대접을 베풀어 주었다.

일정은 본토인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 등 공업.상업 지역, 관광
명소, 고성 등 당시 영국이 외부귀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들로 빠짐없이
빽빽이 짜여있었다.

우리는 짬을 내 한국경제인협회의 카운터파트격인 영국경제인연합회(CBI:
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도 방문했다.

이때 국제담당 임원을 만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것이 10년뒤 한.영경제
협력위원회 창설로 구체화됐다.

귀국길에 일본 도쿄에 하루 머무는 동안 회장단이 부탁한 정치자금 양성화
제도에 관한 참고서적을 겨우 찾아서 샀다.

12월 중순께 귀국하는 비행기에는 안도호로쿠 사장(오노다 시멘트)을 단장
으로 한 일본경제사절단 25명이 타고 있었다.

이 사절단은 게이단렌 우에무라 상근부회장이 주선해 구성된 것이었다.

우에무라는 이에 앞서 이해 7월 이병철 당시 경제인협회 회장 초청으로
방한했었다.

그가 한.일경제협회 회장이 된 후 협회 차원에서 사절단을 파견한 것이다.

이후 한.일간 민간경제교류는 빈도와 내용에 있어서 급속히 확대돼 갔다.

출장을 다녀온 뒤에다 연말이라 일은 더 많아졌다.

특히 신년초에 갖기로 한 박정희 최고회의의장과 경협 전회원 간담회를
준비하느라 숨돌릴 틈이 없었다.

신년간담회는 1963년 1월8일에 열렸다.

박정희를 공식 석상에서 만난 건 이 때가 처음이었다.

< 전 전경련 상임부회장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