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동산시장의 "화두"는 단연 전세값이다.

아파트 매매값은 완연한 하락세인데 반해 전세값은 꺾일줄 모르고 뛰고
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며칠을 기다려야 겨우 물건을 구할 정도로 매물품귀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분당 평촌 등 인기지역에서는 단거리 선수만이 구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
마저 나오고 있다.

"전세값이 오르면 매매값이 오르고, 매매값이 상승하면 전세값도 상승한다"
는 부동산시장의 "상식"이 더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이같은 매매가와 전세가의 부조화는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부동산전문가들
마저 갈피를 못잡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론으론 설명이 어렵고, 소유에서 이용으로 주택개념이
변화되고 있다는 패러다임 변동론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세품귀현상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한가지 짚히는 대목이 있다.

바로 사회전반에 만연돼 있는 불안심리다.

IMF체제라는 전대미문의 혼란을 겪으면서 왠만하면 현상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불안심리가 주택구매수요를 위축시키고 이를 상당부분 전세쪽으로
옮겨가게 했다.

IMF체제이후 주춤했던 결혼 분가 등 자연발생적인 전세수요까지 겹치면서
"전세병목"은 더욱 심화됐다.

게다가 이사철을 맞아 전세수요가 일시에 몰려 전세값이 급등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는 불안심리의 이중성이 잠재돼 있다.

표면적으론 전세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알고보면 부동산투자를
준비하는 예행연습이란 말이다.

불안심리의 저변에는 장래 집값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깔려 있다.

즉 수요자들이 현재는 상황이 불확실해서 당장 집을 사기보다 향후 투자를
위한 "승부수"를 준비하며 전세로 산다는 것이다.

아파트값이 조정국면속에서도 급매물이 곧장 팔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라
생각된다.

최근 불고 있는 조합아파트의 열풍도 따지고 보면 이런 맥락이다.

대형건설업체가 시공을 맡아 사업이 안전한데다 분양받자마자 당장 수천만원
의 시세차익을 거머쥘수 있어서다.

그래서 조합아파트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매력적인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다.

부동산은 사회심리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최근 진행되는 전세가격의 폭등을 보며 급변하는 사회현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 하다.

< 김태철 사회2부 기자 synerg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3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