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 재경부 장관 >

우리 경제의 위기는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파생된 잘못된 관행들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탓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실천력있는 리더십이 결여돼 부실 해결을 위한 국민적 협력이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은 국가부도위기에 처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게 되고
말았다.

그러나 소위 "IMF체제" 이후 1년동안 우리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국민도 기업도 정부도 모두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서도 우리 경제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개혁에 매진했던 것이다.

그 결과 실물경제가 조금씩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고 국가신용등급도
"투자적격"으로 다시 회복됐다.

위기극복의 기초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내외 여건은 그리 간단치 않다.

국내 경기는 저점논쟁을 부를만큼 아직도 어려운 상태이고, 실업자는 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침체와 보호주의의 심화,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라는
불리한 변수도 여전하다.

경제회복 2년째인 올해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방향을
살펴보자.

우선 구조조정은 지난해 큰 틀을 만들었으므로 이제는 그 틀안을 알차게
채우는, 더 힘든 일이 남아 있다.

제도의 변화와 함께 우리 모두의 인식과 관행을 바꾸는 "소프트웨어 개혁"
을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금융기관은 신용평가와 위험관리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워야 한다.

기업은 부채비율 축소와 상호지보의 해소를 통한 재무구조 건전화로 수익성
을 높여야 한다.

특히 기업구조조정은 지난해 합의된 5대그룹 구조조정방안에 따라 차질없이
추진하고 중소기업에 대한 기업개선작업의 후속조치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빅딜도 신속하게 끝내는 것이 대외신뢰와 경제회복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실업대책이다.

사회안정이 없으면 "경제하려는 의지"도 살아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실업자 보호대책비를 7조7천억원으로 작년보다 2조원 확대하고
공공근로사업의 실효성도 높일 방침이다.

아울러 계약제 고용등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유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협력적 신노사문화를 창출하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다.

실물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키는 것도 주요한 과제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견실한 실물경제라는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상반기중 사업성예산의 70%를 집행하겠다는 것은 바로 경제의
체력을 유지.보강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산은 주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투자 등으로 국민경제 입장에서
바람직하고 어차피 추진해야할 사업들이다.

하반기엔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매듭지어지면서 금융시스템이 복원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때는 금융정책을 통해 경제활성화를 지원할 계획이다.

다가올 21세기는 지식기반경제의 시대가 될 것이다.

지식이 자본이 되고 경쟁력의 원천으로 자리잡는다는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야후같은 회사가 대표적인 예다.

이미 선진국들은 이같은 방향으로 경제운용의 틀을 바꾸고 있다.

정부도 지식기반경제 발전계획을 마련해 이에 대비할 예정이다.

지난 1년동안 우리는 강한 실천력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지도력과 온
국민의 노력을 바탕으로 세계가 놀랄만한 속도로 위기를 헤쳐 나왔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준 한 해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간의 성과를 가지고 자기만족에 빠져서는 절대 안된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개혁에 진력해야 한다.

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기적을 이룬 민족(The People Who Made a Miracle)"
이라는 찬사에 빠져 흥청망청했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역사적인 대변환기다.

우리는 이 변환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 희망의 시대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번 선진국의 문턱에서 좌절할 것인가.

21세기 우리의 운명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어깨에 달려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