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9일 발표한 한자병용 추진방안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확산
되고 있다.

한글전용을 주창해온 한글학회(회장 허웅)를 비롯한 한글문화단체 모두모임,
한글바른말 관련 단체들은 문화부의 방침 발표에 즉각 반대성명을 냈다.

이들은 10일 오전 광화문 정부 종합청사 후문에서 한자병용 추진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반면 국한문 혼용을 주창해온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등은 이번 정부 발표를
환영하면서 기초교육현장에서부터 한자 한문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문화부는 행정자치부및 건설교통부 등 관련부처와 협상에
착수, 한자병용방안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자병용에 대한 찬론을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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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기 < 국립국어연구원장 >

한자 병용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는 한글 전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표제어 70%를 한자어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자가
우리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다.

문자 표기에서 한자병용은 당연하며 오히려 진작 이런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한자어에서 유래한 문외한(門外漢)과 무뢰한(無賴漢)을 예로 들어 한자
또는 한자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살펴 보자.

우리나라 대부분의 초.중등학생은 물론이고 성인 대다수도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그 정확한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이다.

대부분은 이들 두 단어에 공통적으로 쓰인 "한(漢)"이 "사람"이란 뜻을
모르고 있다.

특히 무뢰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는데다
한글로만 표기하기 때문에 "일정한 직업없이 떠도는 사람"이란 본 뜻을
모른채 무례한(無禮漢.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다.

이런 사례만으로도 한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하며 한글전용화
란 것도 한자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임을 쉽게 알수
있다.

이른바 한글전용 운동을 벌이는 분들이 누구보다 한자나 한문에 대한
조예가 깊은 인물들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이런 분들이 한글전용화를 부르짖을 수 있는 배경도 실상은 그 분들이
누구보다 한문과 한자에 대한 철저하고 정확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자병용이 필요한 또 한가지 중요한 이유는 한자말과 그에 대응하는 순
우리말의 뜻이 항상 일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자어 "생명"에 흔히 대응하는 우리말 "목숨"의 경우 문장이나 문맥에
따라 바꿔쓸 수 있는 경우도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자와 한글 모두 우리 언어 생활에서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둘을 모두 살려 우리 어휘를 풍부히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자병용과 함께 이번 기회에 중등교과 과정에서 들러리로
전락한 한문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자를 몰라 우리 전통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불편을 겪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한문이 수능 과목에서 제외되고 중등교육 현장에서 조차 제대로 교육되지
않는 현실은 바로 잡아야 한다.

앞으로는 기초교육 과정에서 한문교육을 강화하고 그동안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중.고교 기초한자 1천8백자도 사용빈도와 현실에 맞게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