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이윤이 있는 곳으로 신규투자를 유인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하나의
제도로서 월스트리트의 성공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

-케인스의 "일반이론"

-----------------------------------------------------------------------

케인스의 경제관은 한 마디로 불안정한 시장경제를 정부개입에 의해
보완함으로써 자본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통화문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상 케인스는 "위기상황 아래에선 재무장관이 허리끈을 풀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재량적인 통화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로 인해 케인스는 관리통화론의 시조로 간주되고 종종 인플레이션주의자
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관리통화제도를 주장했다는 것이 바로 인플레를 찬성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케인스가 관리통화론을 주장한 이유는 통화를 자유방임에 맡겨 두면
오히려 인플레나 디플레가 발생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통화를 관리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관리통화제도는 물가불안이 야기하는 "위험"과 "불확실성", 그리고
"무지"를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인플레에 반대하는 케인즈의 사고는 그의 초기 논문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가장 좋은 길은 통화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라는
레닌의 말을 옳다고 한 대목이 그렇다.

"인플레는 부정(unjust)하고 디플레는 불변(unexpedient)하다"는 구절은
널리 알려져 있어 더이상 부연설명이 필요없다.

다만 케인스는 "인플레와 디플레 둘 중에서 디플레가 더욱 나쁘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인플레주의자라고 오해받을 소지를 남겼다.

갈브레이스는 지난 30년대의 대공황(디플레)과 20년대의 하이퍼인플레
상황하에서 사람들은 디플레와 이에 다른 실업의 고통보다는 오히려
하이퍼인플레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디플레에 대한 우려가 인플레를 능가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케인스의 이론적 관심도 물가변화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투자부족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 케인스는 우선 통화공급의 증가가 그만큼 물가를 상승시킨다고
하는 화폐수량설을 비판한다.

화폐수량설이 장기적으로는 사실일지 모르지만 단기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게 케인스의 견해다.

즉 그는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어 있다"고 하면서 개인의 화폐보유나
퇴장성향같은 단기적 요인이 금융제도가 발전돼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선
물가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봤다.

특히 퇴장수요란 존재는 경제진보의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 투자가
감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케인스에 따르면 19세기 말까지 자본주의는 고소득층의 높은 저축률이
높은 투자로 전환돼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으나 20세기 들어선 퇴장으로
인해 저축이 증대돼도 반드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케인스는 퇴장수용의 존재에서 자본주의의 경제적 악(evil)을
찾았고 퇴장을 즐기는 지주계급을 "안락사"(euthanasia of the rentier)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편 현대 자본주의제도에서 퇴장의 존재는 증권시장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케인스는 증권시장에 대한 투자활동을 "투기(speculation)"와
"기업(enterprise)"으로 구분했다.

기업을 장기적 수익성기준에서 저축을 투자로 전환시켜주는 기능을 하는
활동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투기는 시장의 심리를 예측하여 단기적 자본이득을 노리는 활동으로
투자와 전혀 관련없는 퇴장활동이라고 지적했다.

케인스는 따라서 증권시장이 투기화하고 카지노화되는 위험을 경계한다.

그가 "최대이윤이 있는 곳으로 신규투자를 유인하는 사회적 기능을 하는
하나의 제도로서 월스트리트의 성공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주장할 수 없다"고 역설한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결국 케인스는 "중앙기구를 통한 통화신용의 의도적 관리"뿐만 아니라
저축과 투자에 있어서도 "사적 판단과 사적 이익의 손 안에 맡겨서는
안된다"며 정부 개입을 촉구했다.

문우식 <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 mwoosik@gias.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2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