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은 좀 별나다.

시를 좋아해 시 창작법을 공부하면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문단에서는 "서라벌예술대학",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이어 "대구시인
학교"가 한국시단 인재배출의 요람이라고 말한다.

과분한 찬사다.

"대구시인학교"는 어느새 10년을 맞았다.

지난 89년 1월 개설후 지금까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주
목요일 주간반(주부반)과 야간반(직장인반)으로 나눠 모범을 보여 온게
사실이다.

그동안 "문학사상" 1명, "현대문학" 3명, "현대시학" 1명, "현대시" 3명,
"시와 시학" 1명, "심상" 5명, "민족과 문학" 1명, "여성문학상" 1명, "한국
여성문학상" 9명, "신라문학대상" 5명, "신춘문예"에 4명이 등단했다.

또 이들의 수상기록은 "대학문학상" 8회를 비롯 각종 문학상을 합하면
70여회에 이른다.

상금액수는 4천5백만원이 훨씬 넘는다.

이러한 실적을 갖기까지 회원들은 그만큼 열심히 시 창작공부를 했던
것이다.

그래선지 "막강 대구시인학교"라는 별칭도 붙게 됐다.

지금도 신입회원 포함 주간부 야간부 50여명이 매주 모여 "좋은 시읽기"와
"좋은 시쓰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사이비시인 등단이 없는 것도 "대구시인학교"의 특징이다.

실력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스스로 낙선의 쓴맛을 삼켜나가는 것 또한
"대구시인학교"의 학습방법이다.

특히 미당과 고은 두 대시인은 "대구시인학교"를 잊지 않으시고 만날 때마다
안부를 물으신다.

또 전업시인인 필자가 "대구시인학교"의 지도시인인 것을 아시곤 "교장"이라
불러주시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대구시인학교 식구를 보면 다 미인이며 눈동자가 살아 있다"라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역시 과찬일게다.

육관도사가 이곳 공덕원에 들렀을 때 "문필쌍봉"을 마주한 자리에 위치해
있어서 문사가 많이 나온다고 했다고 한다.

석용산 스님이 어느날 전해주신 말씀이다.

"그 자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 "정상을 향해 뛰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시를 사랑하는 우리 회원들은 오늘도 발벗고 뛰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