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hosj@moe.go.kr >

기묘년 토끼해의 아침이 밝은지도 벌써 여러 날이 지났다.

토끼는 작고 양순하며 딱히 본받을 만한 장점이 없는 동물로 흔히 여겨져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동화에서 조차 토끼는 느림보의 대표격인 거북에게 경주에
질 만큼 게으르고 끈기없는 캐릭터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거북을 파트너로 한 또 다른 게임인 "별주부전"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토끼는 속아서였건 자만심에서였건 거북이 꾐에 빠져 사지인 용궁에 들어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결국 기지와 끈질긴 노력을 발휘해 죽을 고비를 넘기고 용궁에서 탈출,
푸른 초원으로 되돌아간다는 얘기다.

불과 1년전, 우리는 짧은 기간에 눈부신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했다는
자만심, 그리고 내일을 생각하지 못한 과소비와 허영으로 IMF 구제금융체제라
는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고통의 1년이 지난 지금, 넋을 잃고 기를 빼앗겨 절망의 구렁텅이로 추락
했던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새로운 의지와 노력으로 극한 상황을 벗어나고
있다.

"용궁"을 탈출하는 전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셈이다.

새해의 여명과 함께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되찾게 됐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지혜로운 토끼"가 된 듯싶다.

절망의 나락에서 탈출하기 시작한 토끼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과
협동이 필요한 해라고 본다.

푸른 초원에 발을 디딘 토끼는 용궁의 악몽을 되새겨 다시는 자만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신년벽두부터 내부적인 불협화음을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먼 우리의 처지를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씁쓸하다.

지금은 내가 먼저 반성하고 관용의 미덕으로 상대를 감싸 안아야 할 때다.

위기가 완전히 끝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바닷속 거북이의 등에서 푸른 초원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