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교수. 경제학 >

지난 18일 금감위는 내년 1월부터 출범하는 금융감독원의 기구를 36국6실의
42개 부서로 조직하는 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로써 97년말 IMF지원금융 충격속에서 어렵사리 입법화된 금융감독기구가
드디어 구체적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머리뿐이던 금감위가 은행 증권 보험 비은행금융기관 등 모든
금융기관에 대하여 기능별로 업무를 담당하는 몸통과 손발 조직인 금감원을
갖추게 되었다.

지난해 금융개혁위원회가 통합금융감독기구안을 다룰 때 반대론은 조직
비대화를 빗대어 "공룡화"를 우려했고, 찬성론은 금융의 자율화 개방화
국제화 등 급속한 여건변화 가운데 특히 겸업화 추세에 대응해 통합감독
기구의 필요성을 내세웠다.

그리고 감독업무에 대한 관료 및 정치권 영향력을 줄이고자 금감위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었던 것이다.

당시 금개위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필자의 입장에서 금감원이 "공정한 자세,
봉사하는 마음"을 원칙으로 삼은 점과 영문 명칭(FSS)의 마지막 글자가
"Service"인 점에 특별한 뜻을 부여하고 싶다.

올해 초봄 발족이래 금감위는 열심히 잘 뛰어주었다.

금감위가 있었기에 부실금융기관 퇴출, 부실채권 정리 등 산적한 금융구조
조정문제해결의 가닥을 잡기가 용이했다.

10개월 안팎의 짧은 기간에 금감위의 작업량은 엄청났다.

금감위는 뛰기만 한게 아니라 때로는 튀기도 했다.

요즘은 금감위가 근래 "그게 아닌데" 싶은 방향으로 궤도를 벗어나는
사례가 잦아 기대가 우려로 바뀐다.

첫째 민간금융기관에 대한 서비스 정신의 결여가 문제다.

채무의 인수.보증 여신한도 내부경영 적기시정조치 조기경보체제 등을
마련해 금융기관에 대해 건전 경영지도와 규제를 "서비스"한다는 자세가
새롭게 싹터야 할 터인데 금융기관과 금융인 위에 군림.호령하는 구태의연한
폐습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제격인데 헌 술과 헌 부대만 보이는 게 현실이다.

둘째 구성 인력의 전문성 부족이다.

금감원 직원 상당수는 변호사자격 및 공인회계사 자격취득자여야 하고 보수
체계도 이에 걸맞아야 한다.

금감위원 구성에도 금융분쟁 사건을 많이 다루어 본 법률전문가, 금융기관
회계감사 경험이 풍부한 회계전문가가 보이지 않는다.

셋째 금감위가 재경부 한국은행과 원활한 협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기관이기주의가 작용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재경부 한국은행은 상수도 담당, 금감원은 하수도 담당이다.

하수가 상수도를 타고 넘치는 위기상황이긴 하지만 그럴수록 업무분장이
분명하고 상호협조가 긴밀해야 한다.

넷째 금감기구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금융"감독이다.

"빅딜"이나 재벌의 경영권 문제는 금감위원장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기업경영권 문제는 원칙적으로 주주총회에서 결정하는 게 시장경제다.

부실은행이 사실상 국유화된 정황에서 정부가 은행을 통해 민간기업부문을
원격조종하는 메커니즘의 부작용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금감위에 "경제"감독기구화를 경계하게 된다.

다섯째 가장 큰 위험은 금감위의 정치 도구화이다.

후진성이 짙은 나라일 수록 검찰 등 사정조직, 국세청과 함께 금융감독기구
가 정치권력의 시녀로 전락한다.

금감위를 탈정치화 목적으로 총리실 산하에 두었다.

이런 금감위가 일부의 공명심과 신분상승 욕구 때문에 권력친화조직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영국시인 셸리(1792~1822)는 "프로메테우스"란 걸작을, 그 부인 메리 셸리
(1797~1851)는 "프랑켄슈타인"을 남겼다.

금감위가 한국 금융산업에 새 생명의 불꽃을 지피는 프로메테우스가 되어야
지 금융산업을 위협하는 프랑켄슈타인이 될까 경계하는 바이다.

금감위는 주어진 권한의 절제, 본업 지키기, 대민 봉사정신, 권력욕구 거세
등의 전제하에서만 제구실을 한다.

금융산업 회생을 기원하는 제단 위에 선 수도승의 겸허한 처신이 아쉽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