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January)의 어원은 두 얼굴의 신 야누스(Janus)에서 비롯됐다.

1월은 지난해와 새로 찾아오는 해의 중간에 서서 양쪽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선 12월도 야누스적이긴 마찬가지다.

12월을 맞고 또 새해를 준비하는 미국과 한국을 나란히 세워보면 완벽한
형태의 야누스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쪽 얼굴은 앞을 내다보며 희망과 기대에 가득차 있는 반면 한국쪽
얼굴은 스스로의 시선을 과거에 고정시켜 놓고 한풀이와 절망, 그리고
좌절을 곱씹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1일 백악관에서 있은 "미국정부 전자상거래(E-Commerce) 1차연례
실무보고서" 발표회는 장미빛 미래의 미국을 보여주는 좋은 단면이었다.

이 발표회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정보인프라를 기반으로 세계를 주도할
능력과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에게 화사한 21세기를 그려 보여준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실업 부도 경기침체로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한국정부가
생각해낸 일이란 환란 규명을 위한 철지난 청문회를 열자는 것이 고작이다.

미래지향적인 얼굴과 과거지향적인 얼굴이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지난주 추수감사절을 끝낸 미국은 곧바로 크리스마스시즌을 맞고 있다.

고급식당과 백화점,도시의 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이를 즐기는
쇼핑객들로 가득하다.

경기호황이 이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번 시즌처럼 북적대는 손님과
구매의욕으로 넘쳐흐른 적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얘기다.

이번 추수감사 연휴처럼 많은 미국인들이 가족을 찾아 여행길에 나선적도
없었다고 한다.

사회안정의 근간이랄 수 있는 가족을 중시하려는 새로운 분위기가 미국에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었다.

잘 풀려가는 집안의 전형적인 모습 그대로다.

백악관의 전자상거래 보고회는 미국 정.재.관의 단합대회 자리를 방불케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앨 고어 부통령등 정부인사들은 민간의 창의력과
기업가정신을 치켜세우느라 바빴다.

기업은 기업대로 클린턴과 고어팀이 탁월한 식견과 비전으로 민간기업의
자율을 지켜주었다고 화답했다.

고어 부통령은 의회지도자들의 정보기술(IT)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었다면 미국의 전자상거래 시장이 오늘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3년동안 무세거래가 가능하도록 합의해 준 의회지도자들의 이해와 경륜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기에 바빴던 하루였다.

이 자리에 초대돼 연설을 한 이베이(eBay)의 멕 휘트먼 사장은 미국
전자상거래 발전의 한 단면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골동품 이나 중고품(garage) 시장을 온라인에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는
이베이는 3년6개월밖에 안된 전자상거래 회사다.

그러나 이베이에 올려진 품목은 현재 1백만가지가 넘는다.

경매에 올라오는 신규건수만도 하루에 16만가지 이상이다.

이들 경매물건에 대한 사자 주문 또한 하루 60만건에 이른다.

회사가 공개된 지 3개월밖에 안 지났지만 주가는 1천1백11%나 올랐다.

미국의 정보화와 전자상거래가 어느정도 빠른 속도와 질, 그리고
양적으로 팽창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남들이 이같이 미래를 향해 쉬지않고 내달려 가고 있는 사이 우리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은 한풀이 식일 수밖에 없는 청문회가 고작이다.

환란이 왜 일어났는 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사실상 환란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분석은 지난 1년동안 지겨울 정도로
이어졌다.

들춰보고 털어보고 심지어 뒤집어 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분석
자체가 엉터리였거나 아니면 그간 밝혀진 사실조차도 제대로 소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환란과 관련해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환란의 책임은 우리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 양식있는 사람들의
인식이다.

우리국민 중 환란의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청문회가 꼭 필요했다면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바로 시작했어야 했다.

신속하게 끝내고 이를 교훈 삼아 미래지향적으로 국정을 운영해왔어야
했다.

그러나 거의 1년이 흘렀고 이제 잊을만한 시점에 청문회를 열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지금은 앞만 보고가도 모자랄 시기다.

우리에겐 할 일이 너무 많다.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수출경쟁력을 높여야 하며 우리 아이들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게" 키워야 할 때다.

또다시 소득없는 청문회로 시간과 국력을 낭비할 겨를이 없다.

< 워싱턴=양봉진 특파원 bjnyang@aol.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2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