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패러다임이나 산업환경이 급속도로 바뀌는 시대에 기업생존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기술개발이다.

새로운 기술로 신상품을 만들어 발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살아남을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자연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술개발 못지 않게 응용 또한 중요하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같은 신기술이 아닌 한
"창조적 모방"도 언제나 가치있는 명제다.

일본 소니는 "영원한 모르모트" "일본주식회사의 연구소"로 불린다.

기술과 제품 개발력이 뛰어나다는 수사들이다.

그런 소니도 처음에는 기술 모방에서 출발했다.

소니의 세계적인 첫 작품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형 "포케터블"라디오.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은 48년 벨연구소가 만든 트랜지스터에 주목하고
53년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진공관 대체부품으로 관심을 가진 것이다.

특허권만을 사들인 도쿄통신공업은 문헌에만 의존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탄생시켰다.

트랜지스터 기술을 창조적으로 모방, 신제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카메라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본 "니콘"도 유사한 탄생신화를 갖고 있다.

독일의 카메라 기술을 모방했다는 점에서다.

"일본광학"(니콘의 전신)은 창업직후 당시 적국이던 독일 기술자들을 일본
으로 데려왔다.

전무월급의 2~3배를 주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이때 카피한 독일 카메라 기술이 오늘날 니콘의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창조적 모방에도 전제조건은 있다.

제품을 향상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전자제품 대메이커 샤프(SHARP)의 전신인 하야카와 금속공업연구소는
지난 25년 광석라디오의 분석 연구끝에 소형 광석라디오를 개발했다.

당시 광석라디오 회사들은 밀려드는 수요에만 만족하고 제품향상에 무관심
했다.

반면 하야카와는 진공식 라디오인 샤프다임(SHARPDIGM)을 내놓는 발빠름을
보였다.

하야카와만 생존했음은 물론이다.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TV, 워크맨 등으로 제품개발을 선도했던 소니도 지난
80년대 생존의 기로를 경험한바 있다.

유사제품이 봇물터지듯 뒤따른데다가 오일쇼크까지 겹친 탓이었다.

만약 소니가 몇가지 신기술에 안주했다면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나 CBS
레코드를 과감히 사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올해초 "신창조론"으로 관심을 끌었던 서울대 이면우 교수가 모방을 경계
하라고 촉구한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설계도 제품공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부를 베끼기만 해서는 죽어도
일류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더 나아가 변하는 패러다임 적응을 요구하고 있다.

부단한 응용노력은 생존의 필요충분조건일 수 없다는 분석으로 여겨진다.

도시가스나 캐시밀론 이불이 유행하는 상황에서 구공탄 제조기법이나 솜틀집
운영방법을 아무리 개선해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지론이다.

결국 우리는 창조적 모방을 통해 신기술 개발을 해내지 않으면 세계 일류가
될 수도 없고 생존도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창조적 모방을 리드하는 기업" 일류기업의 명성은 바로 여기서 얻어진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