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사유방법"이란 책을 써서 종전후 일본철학계를 떠들석하게 만들
었던 나까무라 하지메은 일본문화의 특색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인은 너그럽고 포용적인 성격때문에 여러가지 외래문화를 별마찰없이
섭취, 수용했다. 여러 문화적 요소는 그 존재의의를 인정하며 과거로부터
전승된 것을 되도록 보존하려 하고 이질적인 것을 병존시키면서 거기서 통일
을 찾으려고도 한다"

오랫동안 일본의 정신과 중국의 재능(화혼한재)을 내세웠다가 다시 서양의
재능(화혼양재)로 바꾸어 외래문물 섭취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일본혼(화혼)을 지키면서 선별적으로 외래문화를 수용했고 그것을
일본의 문화로 재창조해냈다.

그러나 나카무라는 전통적 ''대일본'' 의식, 즉 국가지상주의 때문에 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키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분석했다.

그는 아직도 일본의 위험은 이런 의식에 있다고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걱정은 옛이야기가 됐고 요즘 일본인 가운데 이같은 국가
지상주의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문화의 날"인 20일 정부가 일본영화 비디오 만화를 연내에 우선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문화란 대들보에 묶어 둘 성질의 것이 아니다.

또 문화란 문화수준이 낮은 민족이 반드시 수준 높은 문화를 전면적으로
수용한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질적 문화를 수용할 때는 이미 그 민족속에 수용을 가능케 하는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문제는 대중문화를 개방한다는 것은 엄밀하게 보면 문화를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을 개방한다는 뜻이 되는데 있다.

일본의 저질문화유입은 우리가 막고 극복해가면 되는 것이지만 월등한 자본
과 기술로 포장된 문화상품의 위력은 막기 어렵다.

벌써부터 일본의 대형영화사 음반사 출판사에 독접공급을 받으려는 한국수
입업체가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은 그런 사정을 말해 준다.

우리 문화 산업의 기반마저 흔들릴까 걱정이지만 이 기회가 경쟁력강화의
기점이 되도록 할 수 밖에 없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대에 외국문화의 유입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양식이 아닐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