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이 발표한 사업구조조정안에 대해 외국인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정부가 기업들이 벌이는 협상에 개입해 구조조정 속도를 오히려
더디게 하고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경제학자들중엔 "공기업 구조조정을 제대로 못하는 정부가 먼저 개혁에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는 이도 있었다.

이같은 반응은 정부 일각에서 재계 구조조정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잇달아 제기되고 있는 와중에서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어렵게 합의한 것만이라도 지원책을 빨리 마련해 기업구조조정이 결실을
볼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실제로 정부가 5대그룹 제재조치로 검토중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대해 은행들은 8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주한 외국기업인들은 돈과 사업이 오가는 협상의 특성상 이처럼 짧은
기간내에 합의안을 도출한 것은 높이 사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렌스 스미스 한국화이자 사장은 "재계가 자율로 빅딜의 첫발을 내딛었다
는데 의의가 있다"며 "기업들은 이제부터 스스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쪽으로 구조조정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네슬레의 데이브 파커 사장은 5대그룹 빅딜안에 대해 "일단 시작은
합격점"이라며 "정부가 강하게 대응하기 전에 업계에서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미쓰비시상사 한국지사 관계자도 "기업들로선 최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며 "실행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게 돼있는 만큼 더 이상의 논쟁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시한촉구나 제재조치에 대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외국인들도
많았다.

마이클 홀스버그 한누리투자증권 부사장은 "정부는 방향과 큰 틀만 제시
하고 재벌들 스스로 구조조정을 해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빅딜은 대기업 상호간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정부는 금융권 개혁을 빨리 마쳐 금융을 통해
자연스럽게 기업구조조정이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빌 헌세이커 ING베어링증권 조사담당이사는 "중복투자와 과잉투자 축소라는
목적도 좋지만 무엇보다 빅딜 합병 등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며 "이를 무시한 강압적인 구조조정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크로락스 타이셍 탄 인수합병담당임원은 "구조조정과 관련해 정부가
여신중단 등의 방법을 쓰는 것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은행 대출은 비즈니스
행위의 하나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도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재계의 빅딜안을 높이 평가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광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복.과잉투자를 줄여야 한다는 방향은
옳지만 기업들이 그걸 하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원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도 "5대그룹이 2개월만에 이 정도 합의를 본
것은 상당히 무리해서 만든 결과"라고 전제, "기업에 벌점을 주는 식이면
구조조정은 늦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빅딜"이 정말 필요한 지에 대해 새롭게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시장을 상대로하는 산업에서 공급과잉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외국이 요구하는데로 반도체와 자동차를 구조조정할 경우 외국업체들
에만 득이 되고 한국의 잠재성장력을 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강압적인 대기업 구조조정은 외국인 투자와 국가 신뢰도를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재영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도 "빅딜을 해서 망하는 경우 정부가 과연
책임질지 궁금하다"며 "국제적인 규칙과 시장원리에 따른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영진 단국대 경영학과교수는 "일본의 자동차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업체들간 치열한 경쟁의 결과"라며 "정부가 주도하는 빅딜은 자칫
경쟁기피 체제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금융감독위원회 등이 5대그룹 제재방안으로 추진하고 잇는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에 대해선 실행 당사자인 은행들부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이자를 꼬박꼬박 잘내고 있는 회사를 워크아웃 기업으로 선정할 수
없다는게 이유다.

모은행 관계자는 "반도체의 경우 한 회사만도 금융권부채가 3조원 이상이
된다"며 "워크아웃을 하기엔 덩치가 너무 크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해 25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반도체 2사를
워크아웃 하겠다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구조조정인지 묻고 싶다"고 불평했다.

손병두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석유화학 항공 등 이번 구조조정 협상을 통해
통합키로 한 회사에는 곧 수십억달러 이상의 외자가 유치될 것으로 기대된다"
며 "이런 효과를 도외시한채 5대그룹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할 경우
국가신인도는 급전직하로 추락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가 여유를 갖고 지원조치 마련에 신경을 쓰면 기업구조조정은
조만간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