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민 < 한국경제신문사 논설실장 >

파업직전까지 갔던 은행 노사협상이 타결되고 금융구조조정도 계획대로
돼가고 있다고 한다.

금융대란이나 제2환란은 없을 것이라는게 당국자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답답하고 무겁기만 한가.

내년 상반기까지 64조원의 재정자금을 투입하겠다는 정부발표, 그것은
경제규모도 커졌지만 은행부실이 정말 엄청나다는걸 새삼 절감하게 한다.

8.3조치에 법률적 근거를 둔 첫번째 한은특융(대성목재 부실에 따른 조흥
은행 지원 1백억원)이 지원됐을 때, 그 요란했던 논란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런 느낌을 갖는다.

물론 "64조원"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20여년만에 6천4백배로 늘어난 은행부실을 막기위한 지원, 국민 한
사람당 1백60만원꼴인 엄청난 세금이 그렇게 쓰여질 수 밖에 없게된 과정은
되새기고 또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64조원"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그 규모가 크기 때문
만은 절대로 아니다.

또 새로운 64조원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아무런 보장도 없다는 점을 더욱
직시할 필요가 있다.

5개은행 퇴출과 대형은행간 합병 등은 따지고 보면 금융부실에 대한 근원적
처방이 절대로 아니다.

대형화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엄청난 은행부실이
빚어지게 된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금융구조조정의 정부주도는 불가피하다.

비용부담도 당연하다.

금융부실이 관치로 인한 것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도 저축대부조합(S&L)정리를 정부에서 주도했었다.

그러나 금감위 주연의 이번 금융구조조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걱정스러운게
한둘이 아니다.

그 경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이번 금융구조조정에 따라 금융에 대한 관의
입김은 더욱 강화될 소지가 커졌다.

서울.제일은행은 물론 거의 모든 대형은행에서 정부가 대주주로 등장하게
된다는 점은 정말 우려할만한 일이다.

단 한주를 갖지않고도 은행장을 정부에서 멋대로 바꿔온 터인데 대주주까지
됐으니 정말 말타고 경마까지 잡힌 꼴이다.

시중은행에서 마저 줄줄이 낙하산인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정부에서 은행일에 배도 놓고 감도 놓게되면 결과는
뻔하다.

국민들은 또 "64조원"을 내놔야할 게 필지다.

퇴출 통합 등으로 은행 하드웨어를 바꾼데 이어 소프트웨어도 바꿔야한다.

지배구조를 개선, 주인있는 은행이 나오도록 해야한다.

감정적으론 내키지 않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외국인대주주가 나오는
것이다.

부당한 관치에 대해 "No"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니까.

내국인의 은행주식 소유제한을 없애는데 대해서는 반대론도 만만치않다.

이른바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화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가장 좋은 종합금융회사중 하나였던 새한종금을 1년도 안돼 빈껍데기로
만들어버린 거평같은 사람들이 또 없으리란 보장도 없고보면 그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내국인의 은행주식 소유제한도 없애야한다.

대주주에 대한 철저한 여신제한, 소액주주의 감사선임권, 과점주주에 대해
서는 지분율을 초과하는 이사선임을 못하도록 규제하는 비례주주권 등을
제도화하면 사금고화 우려는 막을 수 있다.

출범한지 얼마 되지않았지만 금융감독위원회의 기능도 아울러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금융기관 폐쇄 등 인.허가와 관련된 사안이 금감위 소관인지 재경부 소관
인지 좀더 명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금융정책 전반을 사실상 관장하는 기구라면 "위원회"로서 적절한
지도 의문이다.

같은 위원회지만 공정거래위와는 달리 사무국조직도 왜소한게 금감위이고
보면 업무영역이 너무 넓은 것은 걸맞지 않는다.

은행노조 농성현장에도 금감위원장이 나가야 한다면 그것은 금감위가 꼭
해야 할 일만 하고있지 않다는 반증일 수 있다.

적어도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그렇다.

은행주주 이사회 재경원 금감위의 역할이 보다 분명히 정립돼야 한다.

자율과 책임의 은행경영이 가능해야 또 64조원을 국민이 부담하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