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은 각국이 사정에 따라 핫머니를 규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그스텐 소장은 또 아시아 위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만큼 정치, 관료
사회, 금융, 기업부문에 대한 개혁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시아사태에 대한 미국의 안일한 대응이 세계금융시장의 불안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미국이 적극적으로 세계적 금융불안을 진화하는데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양봉진 워싱턴특파원이 프레드 버그스텐을 만나 대담을 가졌다.
-----------------------------------------------------------------------
-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위시한 미국의 많은
지도자들이 아시아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 버그스텐 소장 =아시아위기는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우리들의
진단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아시아 경제구조 자체에서 찾고 있다.
정부와 관료, 금융권, 그리고 기업이 유지해온 기존 시스템의 각질층이
매우 두껍다는 뜻이다.
더욱이 아시아 경제의 견인차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 오랜 침체속에 제
궤도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시아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 그러나 아시아 위기가 최근들어 확산일로에 있다.
러시아나 중남미 등 개도국 전체가 금융불안을 겪고 있고 아시아병에
전염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결국 아시아병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개도국 현상은
아닌지.
<> 버그스텐 =물론 개도국 전체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시아 위기는 아시아적 특수성에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개도국들이 안고 있는 보편적 문제가 있고 아시아가 안고 있는 특수한
문제가 있다.
러시아 등의 문제는 체제 이행이라는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원자재 생산국인 중남미가 타격받고 있는 것은 역시 아시아 충격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 아시아 위기에 대한 과소평가들이 러시아 사태 등 위기의 확산을 불러온
것은 아닌지.
그동안 아시아 위기를 다루어 왔던 미 정부의 입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 버그스텐 =아시아 위기는 처음부터 과소평가된 것도 사실이다.
러시아와 중남미로 금융불안이 확산되고서야 미국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 같다.
미 정부 역시 러시아나 중남미로 불길이 번지며서부터 이 문제가 세계적
위기로 전염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미국정부의 대응에는 처음부터 잘못이 있었다고 할 수 있고
이는 또 지금이라도 보다 적극적이고 타협적이어야 한다는 시사점이 될 수도
있다.
-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강한 달러를 포기하고 일국 경제보다는 세계경제를 고려하는 소위
시각의 조정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 버그스텐 =옳은 말이다.
미국 경제는 사실 지난 수년동안이나 장기적인 활황을 보여 왔기 때문에
세계경제 특히 개도국들의 경제난을 무의식적으로 과소 평가하고 있다.
물론 미국이 금리를 당장 끌어내리는 것은 인플레 등 부작용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독일 일본 등과 더불어 세계경제의 협조 가능성을 다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만으로는 불가능하고 일본이나 독일의 공동노력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 일부 아시아인들은 아시아위기가 일부 악성 투기자금의 농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구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핫머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말레이시아 등 일부 국가들은 이미 상당한 수준의 외환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 버그스텐 =단기자금이동에 대한 규제 문제를 범세계적인 테두리에서
다루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가 단위에서는 심각히 고려해 볼만한 일이라고 본다.
한국이 위기를 맞은 것은 단기자금은 마음대로 들어올 수 있게 해놓았던
반면 장기자금 특히 직접투자자금 유입을 어렵게 만들어 놓아 단기자금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정반대로 했었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관료들의 책임이 정말 크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외환규제를 교려할 필요가 있다.
- 일본경제의 회복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 버그스텐 =일본경제의 침체는 사실상 정치.관료주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일본 정계가 정치적 이해득실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관료사회가
기득권 수호에 매달려 있는 한 일본경제의 획기적인 전환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 한국과 일본은 여러면에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금융관련 법률이나 제도 등은 일본의 복제판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 또한 부정적일 것으로 보는데.
<> 버그스텐 =그렇지는 않다.
1조달러로 추정되는 일본은행들의 부실채권은 일본경제의 골치거리다.
한국 금융계 또한 부실채권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막강한 관료주의 또한 두 나라의 풀기 어려운 난제임에 틀림없다.
양국의 관습과 제도, 그리고 법체제가 복제판이라는 것 또한 중요한 지적
이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 몇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의 김대중정부는 진정한 의미의 경쟁적 선거를 통해 당선된 민주정부
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 순수한 의미의 경쟁선거가 정착
되었다고 보기 어려운 일면이 있다.
한국은 대통령중심제를 택하고 있지만 일본은 의사결정과정에 여러 가지
장애가 있을 수 있는 내각제를 택하고 있다.
김대중정부가 개혁을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는 반면 일본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가 일본보다는 더 긍정적인 것도 사실이다.
- 한국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지나치게 낙관적인게 아닌가.
<> 버그스텐 =한국 상황은 지표상으로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나 태국 등과 비교해 보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빨리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4백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고와 상당한 규모의 한국경상수지 흑자달성은
그 대표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원화가 최근들어 다소 절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환란전 수준과
비교해보면 아직도 80~90% 절하되어 있는 상태다.
이는 한국상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수출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 외환보유고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비싼 이자로 빌려다 싼 예금금리로
예치해 둔 현금에 불과하기 때문에 앉아서 손해보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 버그스텐 =물론 외환보유고를 무작정 늘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적한대로 외환보유고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금리면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한국은 지금 대외지급능력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손해는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 위기탈출에 걸리는 기간을 주제로 벌인 IIE 내부토론회에서 귀하는 가장
비관적인 쪽에 서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버그스텐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짧게는 7, 8개월에서 길게는
3, 4년까지 내다 보는 편이었다.
우리 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이 과거 역사에 나타난 125번의 위기를 분석한
결과 위기에서 빠져 나오는데 걸린 평균기간이 2.5년정도였다는 분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아시아위기, 특히 한국의 위기 탈출기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본다.
- 한국은 약 2천억달러의 외채를 안고 있다.
따라서 줄잡아 매년 2백억달러를 이자로 지급해야 한다.
한국의 1년 수출 1천억달러에서 최소한 20%를 더 벌어야 한다는 계산이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요즈음 같은 상황에서 20%를 남긴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이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위기는 예상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 버그스텐 =이자외에 원금까지 갚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비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전제하에서는 빚을
현수준 그대로 끌고 갈 수도 있다.
대외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한국인들은 중대한 기로에 있으며 신중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
노사문제, 금융권개혁, 정부와 정계개편 등 의제로 나와 있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이해와 인내로 임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이른바 빅딜이라 불리는 재벌그룹간의 기업교환(swap)이
상당수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대한 귀하의 평가는 무엇인가.
<> 버그스텐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세계 자동차산업이 놀라운 속도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끼리 심도있는 논의를 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자발적인 참여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결정을 내리든 기업교환은 교환 후의 산업전망에 대한 분명한
그림이 전제돼야 한다.
예를 들어 시장점유율이라든가 전체 생산능력 원가 등 보다 원론적인 실사가
이뤄지고 난 후에야 가능하다.
개혁에는 신속성이 중요한 변수이긴 하지만 시간만 중시하다가 더 큰
실수를 하게 되면 그 때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수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