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는 회생불가능한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마는가.

스티브 마빈 쟈딘플레밍증권 이사가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한국정부와 기업의
안일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한국이 제2의 외환위기를 맞고 말 것"
이라는 극단적인 비관론을 내놨다.

그러자 일부 국내 증권분석가들이 "터무니없는 논리비약"이라며 공박하고
나섰고 재미 변호사까지 가세했다.

한국경제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요 논.쟁점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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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마빈 < 자딘플레밍증권 조사담당이사 >

한국의 경제위기는 지도층의 총체적 리더십 부족에서 비롯됐다.

투자수익률(ROI)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막대한 외부자금을 끌어다 탕진한
재벌오너들, 무책임한 투자를 조장하면서 경제를 파탄으로 이끈 고위 정부
관리와 정책입안자들,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잘못된 진단을 내리면서
위기를 미리 경고하지 못한 국내 경제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이에 대한 대가를 한국의 보통사람들이 치르고 있다.

한국경제위기의 씨앗은 지난 94년 상반기부터 96년 하반기에 걸쳐 뿌려졌다.

지난 92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회복국면에 접어들자 곧바로 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대폭 늘었다.

설비투자는 초기엔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진행됐으나 시장점유율 확대
욕심으로 갈수록 과도해졌다.

과잉설비 문제가 심각해졌고 금융비용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기업들은 브레이크없는 폭주기관차였다.

한국기업들이 장기투자수익률을 진지하게 고려해 계획을 세웠는지
의문스럽다.

규제완화의 필요성에서는 역설적이지만 삼성그룹의 자동차사업진출때
정부가 제어하지 못했다는게 불길한 조짐을 던졌다.

이런 무모함의 예가 한보나 기아그룹의 부도사태다.

한보와 기아사태로 금융시스템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곧 제일은행의 부실로 이어졌다.

금융위기의 도래를 경고한 것은 외국의 투자가들이었다.

한국기업의 주식을 헐값에 팔아치웠고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의 폭락이
뒤이었다.

제1의 외환 및 금융위기였다.

IMF체제로 접어들면서 설비투자는 멈췄지만 차입금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기업 전체적으로 볼때 국내외차입금이 4천9백9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97년 GDP의 1백64%에 이르는 규모다.

한국내 금리와 외채금리를 감안하면 매월 60억달러를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죽어가는 재벌을 살리고자 하는 시도도 계속됐다.

협조융자가 그것이다.

기존의 차입금 이자도 못내는 기업들에게 신규여신을 제공했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금융관행으로 부실채권은 늘어만 갔고 중소기업들은
은행차입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한국기업들의 차입금문제와 부실한 금융시스템은 제2의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는 요인이다.

정부와 기업총수들은 수출과 자산해외매각에 희망을 걸고 있다.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은 99년말까지 무역수지흑자를 최소 1천억달러까지
달성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가능할지 의문이다.

우선 한국기업들은 이익보다는 매출액키우기에 급급하고 있다.

현상황의 돌파구는 이익창출이다.

이익이 남지 않는 수출금액의 증가는 소용없다.

지난 1.4분기에는 수출채산성이 그런대로 개선됐다.

그러나 올하반기 들어서는 수출채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수출비중이 큰 반도체 수출단가가 상반기 대비 20~30%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밀어내기식 수출도 강화될 것이다.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동남아시장과 홍콩 중국시장으로의 수출도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해외에 자산을 매각하는 것도 쉽지 않다.

투쟁적인 근로자들, 얽히고 설킨 상호출자, 상호지급보증탓이다.

한국정부와 기업들은 이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 정부계획들이 많다.

재경부가 IMF와 사전협의도 없이 외국자본이 참여할 것이라며 지난 4월
발표한 두개의 기업구조조정기금 설정안은 좋은 사례다.

재경부는 결국 국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조달한다고 방침을 변경
했다.

이미 예측했듯이 주가 300선은 이미 붕괴되기도 했으며 추가하락의 가능성도
크다.

한국경제에 대한 이같은 분석과 전망은 맞을 수도 있고 빗나갈 수도 있다.

다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료나 정책입안자들의 결단성있는 실천력과
기업인들의 경영마인드쇄신이 한국경제의 진로를 결정할 것이란 점이다.

< 정리=김홍열 기자 come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