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중심부에 위치한 스탬포드 로드(Stamford Road).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북적되는 곳이다.

아침 출근시간엔 넥타이와 서류가방으로 무장한 비즈니스맨들로 거리가
메워졌다가 이내 그 자리는 몰려든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하다.

저녁이 되면 이들이 함께 어우러뎌 다음날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룬다.

이 곳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복합단지 "래플즈시티(Raffles City)".

래플즈는 싱가포르를 금융과 무역 중심지로 개발하는데 크게 기여한 영국
총독 스탬포드 래플즈경(Sir Stamford Raffles)의 이름에서, 시티는 "도시
속에 들어선 도시(The City Within a city)"라는 개발개념에서 따왔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단지는 싱가포르 건축사에 큰 획을 긋고 있다.

인근에 있는 복합단지인 마리나센터나 선텍시티가 래플즈시티를 벤치마킹해
지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 쌍용건설이 시공했다는 점이다.

우선 구성건물을 살펴보면 세계 최고층 호텔로 기네스북에 오른 웨스틴
스탬포드호텔(73층), 쌍둥이 건물인 웨스틴 플라자호텔(28층), 오피스빌딩
(42층)과 이들 건물을 지상과 지하로 연결하는 상가인 포디엄(지하3층, 지상
7층) 등이 있다.

비즈니스 숙박 쇼핑기능을 한곳에 모아 모든 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게한 것이다.

"이 곳엔 하루 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일단 래플즈시티에 들어서면 오전에 오피스빌딩에서 비즈니스 상담을 벌인
다음 점심때 짬을 내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지요.

밤에도 다른 곳으로 갈 필요없이 단지내 호텔에서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시간낭비없이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게한 컨셉트가
맞아떨어졌습니다"(셰민 오이 웨스틴 스탬포드호텔 업무개발이사)

이 단지의 역사는 지난 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싱가포르는 연평균 10%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동남아시아 금융
센터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항구도시로 방문객들이 해마다 늘었고 대규모 국제대회도 연이어
개최되자 싱가포르 정부는 호텔 대회의장 사무실 상가 등을 단일건물내에
수용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좁은 국토에 대규모 시설을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우선 원할한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싱가포르 개발은행(DBS)
을 주관기관으로 래플즈시티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부지는 72년에 헐린 유서깊은 학교 래플즈 인스티튜트 자리로 정했다.

이 곳은 영국식민지시절부터 행정관청들이 밀집했던 곳으로 업무시설
밀집지역인 셴톤(Shenton)구역과 상업지역인 오처드로드(Orchard Road)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다.

두 지역을 연결, 유기적인 도시발전을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공사는 쌍용건설이 선정됐으며 공사는 프로젝트 구상 10년째인 80년9월에
첫삽을 뜨는 것으로 시작됐다.

구상기간이 길었던 것은 이 프로젝트가 싱가포르 복합단지 건축의 효시여서
향후 다른 프로젝트에 미칠 영향을 고려, 완벽한 준비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공사과정에서도 수많은 조정과 보완이 뒤따랐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 등 국내에서는 생소한 규정때문에 시공도면을
수시로 뜯어고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공사초기에는 어려움이 무척 많았지만 괴로웠지만 완공시점(지난 86년9월)에
이르러 생각해보니 기술축적은 물론이고 다른 공사 수주에도 큰 도움이
됐지요"(채윤병 쌍용건설 싱가포르 지사장)

사실 쌍용은 이 건물 준공을 계기로 체계적인 건설업체로 발돋움했다.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수주가 잇따랐고 쌍용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갔다.

래플즈시티는 완공후 싱가포르 상징 건축물(The Landmark of Singapore)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특히 원기둥 형태인 웨스틴 스탬포드 호텔은 수려한 미관과 세계에서 제일
높다는 상징성때문에 전세계 명사들이 즐겨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빗 카퍼필드, 김영삼 전대통령 등도 이 호텔에서
묵었다.

같은 호텔을 짓더라도 상징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 글 송진흡 기자 jinhup@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