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 13일 "최근의 통화공급 확대주장에 대한 검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돈을 풀어서라도 빈사상태에 빠진 경제를 우선 살려놓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한 것은 통화정책을 책임진 중앙은행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얘기다.

아무리 기업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구조조정이 이제 막 본격화된 시점에서
돈을 풀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그만큼 정책판단이 어려운 미묘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면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자칫 우리경제의 고질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치유할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또한 통화공급을 늘리면 일시적으로는 시중금리가 떨어질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명목금리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지적도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다.

그리고 통화공급 확대가 거시경제정책인데 비해 신용경색은 미시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돈을 푼다고 반드시 신용경색이 풀리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일리 있다.

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한은 주장은 너무 원론적이며 통화가치 안정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우선 지금은 통화공급을 늘려도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은과 입장을 달리한다.

금융.외환위기 이후 가계소비 기업투자 등이 모두 크게 위축됐고 통화유통
속도마저 크게 낮아진 마당에 수요측면에서의 물가상승압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환율 상승에 따른 원가압박으로 공급측면에서 상당한 물가상승압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수요측면에서 팽창이 없다면 비록 물가가 오른다 해도 단발성으로
그치게 마련이다.

따라서 통화공급을 늘려도 한은이 주장하는 지속적인(sustained)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염려는 없다.

만일 인플레이션이 단발성이라면 물가상승에 따른 명목금리 상승이나
구조조정 지연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더구나 과거처럼 방만한 경영을 할 상황도 아닌데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늦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가지는 당면과제인 구조조정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을 조달을 위해서도
어느정도는 한은차입을 통한 통화증발이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현재 재원조달 방법은 세수증대 채권발행 통화증발 등이 있는데 최악의
불황속에서 세수증대는 한계가 뚜렷하며, 영세한 채권시장및 고금리때문에
국공채 소화도 쉽지 않다.

만일 한은 주장대로 실세금리로 국공채를 소화시킨다 해도 이때문에 민간
기업의 자금조달 길이 막히는 구축효과가 심각해진다.

비록 신용위험 때문에 통화공급 확대가 곧바로 기업대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우량기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신용경색의 완화를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이다.

구조조조정을 신속히 해야 한다는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만일 대부분의
기업이 쓰러지고 난 뒤에는 구조조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