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뭐길래 사람사는 곳이면 어디든 비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그 말에서 오늘따라 더욱 비릿한 냄새가 나는것만 같다.

옛말에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번이랬는데 하물며 그 비릿한 말을 너무
자주 들으니 역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젠 어느 한곳에서만 비리가 저질러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곳에서나
저질러진다.

지금은 비리사건이 터졌다하면 그 액수가 억대다.

어마어마한 억대의 비리에 기가막혀 "억, 억"할 지경이다.

사회 곳곳에 퍼지는 비리가 마치 암처럼 느껴진다.

초기에 발견하지 않으면 금방 다른 부위로 비리균이 전이되고 만다.

그땐 이미 말기증상으로 더이상 살릴 길이 없다.

그만큼 비리의 균은 치명적이며 그 독 또한 무섭게 번진다.

각 분야의 비리균이 만연되는 사회가 곧 총체적 난국형상이다.

비리를 저질러놓고도 그 이유를 관행탓으로 돌린다.

이럴 땐 비리의 반대말을 생각하게 된다.

비리의 반대말은 도리다.

어느때부턴가 우리는 도리란 말을 잊고 살아왔다.

새삼 도리란 말이 좋은 약처럼 느껴진다.

옛 어른들은 가정교육중에서 "사람의 도리를 해야지"란 말을 지침으로
내세웠다.

그 말의 뜻을 새길때가 요즈음인것 같다.

사람의 도리를 한다면 왜 비리를 저지르겠는가.

며칠전에 잠도 안자고 골프경기를 보면서 작은 공 하나가 저토록 큰 기쁨을
주는구나 싶어 감동스러웠다.

어떤 찬사도 모자랄만큼 박세리는 최선을 다했고 그 최선으로 온 나라 온
국민을 IMF의 늪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오게 해주었다.

지금 어느 누가, 무엇으로 온 국민을 감동시켜 주겠는가.

작은 공으로 큰 일을 해낸 그는 딸로서, 국민으로서 도리를 다했다는
생각이 든다.

최고가 반드시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최선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주었다.

작은 공 하나로도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을 기쁘게 해주는데, 높은자리
부자자리를 차지하고도 기쁨은 커녕 비리로써 고통을 주는 자들은 작은 공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골프 공의 무게가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의 주먹보다도 작은 공이 아닌가.

그 공이 세계를 제패했는데 비리로써 나라를 좀먹는 자들은 공보다도 더
작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사람의 도리를 비리로 착각한 것일까.

그들을 도적이라 불러도 된다면 요즈음의 도적중엔 의적이 없다.

연산군 때의 홍길동이나, 반세기후인 명종때의 임꺽정이나, 1백30년후인
숙종때의 장길산같은 의적은 없고 그냥 도적만이 있을 뿐이다.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두려움을 예사로 아는 사람들인 것 같다.

비리를 저지르다 들통나면 벌금물고 감옥을 안방가듯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다보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곧 지혜의 시초"란 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사회가 건전해지려면 모든 사람이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두려움을 가진다면 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리가 두려워져서 도리를 다하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것만 같다.

세상이 아무리 약육강식이라고 하지만 강자가 약자를, 가진자가 못가진자를
괴롭히는 것은 마치 황소개구리가 토종개구리를 잡아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맹금류인 매도 땅에 떨어진 나락은 집어먹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비리를 버릇처럼 저지르는 사람들은 잡식동물보다 더 잡식성이다.

잡식성으로 독식하다 체하는 격이다.

위장도 과식하면 탈이 나는데 남의 것을 훔쳐먹고 빼앗아 먹는데 탈이 안날
수가 없다.

비리는 소화제를 먹어도 소화되지 않고 회복제를 먹어도 절대 회복되지
않는 만성고질병과 같다.

치유법은 달리 없다.

비리를 도리로 바꿀 때 그 병이 비로소 치유된다.

도리란 도덕책이나 장식하는 글자가 아니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심성부터 고쳐야 한다.

사람의 심성은 7년마다 변한다고 하니 비리를 저질렀던 사람들,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 저지르려고 벼르는 사람들 모두 이제부터라도 심성의
전환을 해야 할것 같다.

심성을 바꾸는 것이 곧 두려움을 깨우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리란 무슨 큰 명제가 아니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는 마땅한 일일 뿐이다.

자기의 본분이 자기의 도리이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비리보다 도리의 향기가 도도하게 퍼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