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직업윤리 .. 유한수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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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근면성실을 제일의 덕목으로 친다.
특히 직장에서는 한눈 팔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할 것이 요구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직장에서 "어느정도 성실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무한대로" 성실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은 인생을 무한대로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 무한대의 희생을 요구한다거나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계약사회인 선진국에서는 개인별 업무의 내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며 그에따라 보수가 정해진다.
그런 계약이 없는 우리나라는 그저 살신성인적 봉사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기업은 권한을 주는데는 인색하고 책임추궁은 날카로운 경우가
많다.
계약관계가 아니고 가부장제다.
그런데 부실기업이나 부실은행의 퇴출에서 보듯 직업의 안정성은 날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우량기업에서도 경기의 부침에 따라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직하거나 퇴직한 사람들은 직장이나 직업에 대한 개념에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가족처럼 일하자"던 평소의 말과는 달리 "나가 달라"고 할 때 충격을
받는다.
기업주는 직원들을 평가할 때 "직업윤리"라는 잣대로 잰다.
기업주가 말하는 직업윤리는 "무한대의 봉사"에 가깝다.
반면에 직원들은 기업에 대해 "기업윤리"를 기대한다.
기업윤리란 "고용보장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다.
둘다 상대방의 최대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 부실은행 직원들의 전산망 봉쇄나 일부 기업의 파업사태는 이같은
"무한대"와 "최대한"이 부딪쳐 빚은 갈등이다.
이런 갈등이 되풀이 되지 않자면 우리사회에 합리적인 윤리기준이 빨리
정리돼어야 한다.
노사문제는 법으로 엄정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상호기대치의 간격을 좁혀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한수 < 포스코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hsyu@mail.posri.re.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8일자 ).
특히 직장에서는 한눈 팔지 않고 자신의 일에 몰두할 것이 요구된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직장에서 "어느정도 성실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무한대로" 성실할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은 인생을 무한대로 보장해 주는 곳이 아니다.
그러므로 직원들에게 무한대의 희생을 요구한다거나 평생직장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해서는 안된다.
계약사회인 선진국에서는 개인별 업무의 내용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책임과 권한이 분명하며 그에따라 보수가 정해진다.
그런 계약이 없는 우리나라는 그저 살신성인적 봉사를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기업은 권한을 주는데는 인색하고 책임추궁은 날카로운 경우가
많다.
계약관계가 아니고 가부장제다.
그런데 부실기업이나 부실은행의 퇴출에서 보듯 직업의 안정성은 날이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우량기업에서도 경기의 부침에 따라 정리해고나 명예퇴직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직하거나 퇴직한 사람들은 직장이나 직업에 대한 개념에
혼란이 오게 마련이다.
"가족처럼 일하자"던 평소의 말과는 달리 "나가 달라"고 할 때 충격을
받는다.
기업주는 직원들을 평가할 때 "직업윤리"라는 잣대로 잰다.
기업주가 말하는 직업윤리는 "무한대의 봉사"에 가깝다.
반면에 직원들은 기업에 대해 "기업윤리"를 기대한다.
기업윤리란 "고용보장을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다.
둘다 상대방의 최대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근 부실은행 직원들의 전산망 봉쇄나 일부 기업의 파업사태는 이같은
"무한대"와 "최대한"이 부딪쳐 빚은 갈등이다.
이런 갈등이 되풀이 되지 않자면 우리사회에 합리적인 윤리기준이 빨리
정리돼어야 한다.
노사문제는 법으로 엄정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상호기대치의 간격을 좁혀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유한수 < 포스코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 hsyu@mail.posri.re.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8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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