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벤처다.

그래서 "디자인 투자는 신기술 투자"이다.

벤처가 열매를 맺으려면 디자인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나라 전체가 벤처에 투자하듯 디자인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건 이 때문
이다.

미국경제가 90년대초까지 계속되던 불황을 딛고 일어선 뒤에는 벤처가
있었다.

그 벤처를 뒷바라지한 것이 바로 디자인이었다.

세계시장을 누빈 미국 벤처기업의 상품은 "신기술을 아버지로 디자인을
어머니로"해서 태어난 것이다.

지금도 벤처기업의 요람 실리콘 밸리에 세계적인 디자인회사들이 진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 준다.

벤처에 힘을 실어주는 디자인이 있는가 하면 자신이 벤처인 "디자인 벤처"
도 있다.

모험적인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회사들이다.

이들은 자기 이름을 걸고 디자인 상품을 내놓는다.

한개에 수천달러까지 가는 전등을 디자인하는 이탈리아의 "아르테 미데"나
레몬짜개 하나로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알렉시"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디자인 벤처"가 시작됐다.

애니메이션 전문인 "디자인중심"이나 멀티미디어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전공인 "이미지드롬",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CI(기업이미지통합) 전문인
"로고뱅크" 등이 디자인 벤처에 속한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한국 전통문양 넥타이를 파는 "누브티스"나
"새암디자인" "문화환경" 등도 디자인 벤처로 꼽을 수 있다.

이들은 디자인 상품만으로 엄청난 매출을 올리고 있다.

디자인은 벤처이면서도 몇가지 점에선 벤처보다 훨씬 낫다.

우선 투자비용이 덜 든다는 점이 그렇다.

기술 투자에 1백이 든다면 디자인 투자는 단 10으로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자본투자규모에선 디자인이 훨씬 덜 벤처적(모험적)인 셈이다.

이 점이 디자인의 매력을 더해 준다.

성공률이 높다는 점도 일반 벤처와 다르다.

"성공이 아니면 망하는" 벤처와 달리 디자인은 히트작을 못내도 "중간"은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럭저럭 팔리는 제품이 디자인 투자로 효자상품으로 바뀌는 사례는 흔하다.

효과가 빠른 것도 벤처 투자보다 나은 점이다.

디자인을 전혀 모르는 기업이라도 몇달이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뛰어난 디자이너를 만나 한두시간만에 기존 제품 디자인의 문제점이 해결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디자인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큰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경영전략이다"(김대중 대통령 98년 4월21일)

디자인의 이런 벤처적인 특성 때문에 "디자인=불황 탈출의 열쇠"가 된다.

1920년대말 세계를 엄습했던 대공황 때의 경험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때 미국의 천재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제품들은 "뉴딜" 못지않게 수요
진작에 큰 몫을 했다.

"잉크가 새지 않으면서 날씬한 만년필"과 백색가전이라는 명사를 만들어낸
"하얀 냉장고" "바람처럼 매끄러운 자동차"가 그것이다.

당시 디자이너 노먼 벨 게네스(1893~1958)가 스피커와 배선 조립방식을
바꿔 내놓은 우아한 "라디오(1932)"는 상점 앞에 구경꾼들을 끌어모았다.

라디오 판매량이 단숨에 50%나 늘었다고 한다.

디자이너 올리베티의 작품 "아름다운 색의 날씬한 타자기"가 뉴욕 쇼윈도에
나타나자 직장 여성들이 줄을 서서 구경했을 정도였다.

이 광경에 충격받은 IBM이 장기 디자인 전략을 세웠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30년대 미국의 대공황 탈출은 "디자이너들의 상상력 승리"라고 할만큼
디자인의 역할이 컸다.

디자인이 소비자와 기업을 자극하는 강한 촉매제가 됐던 것이다.

일본의 전기제품 회사인 켄우드는 마지막 자구책으로 CI 전략을 써 파산을
모면했다.

영문 "KENWOOD"를 쓰면서 W자 가운데에 역삼각형을 넣은 것을 회사
심벌마크로 쓰는 등 대대적인 이미지통일 작업을 추진했다.

멋있다며 젊은이들이 자동차에 이 심벌마크를 달고 다닐 정도로 인기를
끌며 이 회사는 다시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됐다.

이 원리는 한국 상황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수출을 늘려 IMF 관리체제를 벗어나는데 디자인만한 것이 없다.

주로 품질과 가격으로 재던 경쟁력에 디자인 변수를 추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를 무대로 뛰려는 기업에 디자인은 전공필수와 같다는 얘기다.

기능이나 품질은 세계 수준에 버금가는데도 왜 팔리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묻는 경영자들은 이 점을 꼭 염두에 둬야 한다.

"한국 디자이너들의 재능은 뛰어나다. 세계를 무대로 뛸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단한 작품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미국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디자인 전문회사인 이노디자인 김영세 사장의
말이다.

세계적인 디자인이 나오려면 디자이너들에게도 투자가 돼야 한다.

오늘 막을 올리는 "98 우수디자인(GD) 상품전"에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같은 인식에서다.

< 김용준 기자 dialec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