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세탄백화점에는 "해방구"라는 코너가 있다.

백화점측이 단독매장을 내기 힘든 디자이너들의 의류를 사서 꾸미는
편집매장이다.

재고부담이 없는 만큼 디자이너는 품질과 디자인에만 신경쓰면 된다.

미국의 시어즈나 프랑스의 라파이에트 역시 비슷한 시스템을 통해
디자이너를 육성한다.

이와 달리 국내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생산 판매를 혼자 담당, 재고부담과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일이 많다.

이신우(57)씨는 그 대표적인 경우다.

이씨는 68년 "오리지날리"를 내놓은 뒤 활발하게 활동, 앙드레김 진태옥씨와
함께 국내 3대 디자이너로 꼽혀 왔다.

72년 뉴욕 실크팜사에 블라우스 디자인을 수출했고 90년 도쿄컬렉션에
참가, 91년 일본 마이니치패션대상을 받았다.

93년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참가, 한국패션을 세계에 알렸다.

오리지날리 영우 쏘시에에 이어 이신우컬렉션(액세서리), 이신우옴므
(남성복) 등을 런칭했다.

그러나 수요예측 실패와 복제품 범람에 따른 재고증가로 지난 1월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씨는 하지만 "오리지날리"를 살리려는 협력사와 대리점, 종업원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신우"와 "이신우옴므" "이신우컬렉션"의 디자인을 맡고 사옥 1층에
쇼룸도 마련했다.

대신 컬렉션에서 반응이 좋은 제품만을 만드는 기획수주생산방식
(주문생산제)을 도입했다.

첫행사로 24일 서울 합정동 사옥에서 "터널"이란 주제의 98추동컬렉션을
여는 이씨는 "채권단에서 내 이름을 무형의 자산으로 인정하는 걸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털어놨다.

대리점들이 이씨의 재기에 앞장선 것은 패션의 경우 브랜드이미지가 매출을
좌우하는 만큼 오리지날리를 살리는게 다른 브랜드를 취급하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패션은 가격보다 이미지로 경쟁하는 디자인산업이다.

이미지란 일단 만들어지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다.

랄프 로렌과 캘빈 클라인의 97년 매출액은 우리나라 자동차수출액과
맞먹는다.

"이번 일이 우리나라 패션업계의 거품이 빠지고 유통체계의 문제점이
해결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씨의 소망과 오리지날리를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으면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