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퇴출될 55개 부실대기업은 협조융자기업과 여신관리규정상의
부실징후기업들을 대상으로 골라낸 것이다.

따라서 모두 회계장부상 부실덩어리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부실판정의 기준은 채무 변제능력을 기본으로 해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정했다.

기업부실 예측도가 높은 재무적 요소, 영업이익 창출능력 또는 금융비용
부담능력 등이 우선 포함됐다.

이같은 판정은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의 고금리와 경제여건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다.

연 10~12%의 정상금리 등을 가정해 미래의 기업가치를 추정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은행간의 이견 조정 과정에서도 기업의 현상황보다는 미래가치가 우선적
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부실기업 판정과정에서 정부내 혼선으로 일관된 원칙과 기준이
적용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부실기업판정위원회가 구성된 직후인 지난달 10일 김대중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부실기업 퇴출 원칙을 천명하면서 금융시장의 경색현상이 심화
되자 재경부 금감위 등 당국은 슬그머니 후퇴했다.

은행권도 적극적으로 퇴출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보완지시가 떨어지면서 이같은 분위기는 1백80도 반전
됐다.

결국 5대그룹이 포함되는 등 우여곡절끝에 숫자불리기 차원의 끼워넣기가
이뤄졌다.

대표적인게 5대그룹의 퇴출기업들.

5대그룹 계열 20개사중엔 현대리바트만이 상장사다.

나머지는 소규모의 비상장사로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은행과 당국의 압력이 커지자 성의차원에서 종업원 3~5명의 기업을 포함한
"준비된 희생양"을 "헌납"했다는 후문이다.

6대이하 계열도 마찬가지.

그룹이름을 달지 않은 곳이 많고 대부분 지명도가 낮은 기업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오래전부터 "버림받을 기업"이었음을 시사한다.

이미 부도상태이거나 사실상 퇴출을 눈앞에 둔 경우도 상당수다.

명단을 접한 기업분석가들이 "대통령이 화낼만 했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해태나 신호처럼 이미 자체적인 구조조정노력을 벌이고 있는 기업
까지 숫자채우기에 급급해 앞뒤 안가리고 포함시켜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게
한 경우도 있다.

해태유통 전자 제과 등은 채권단간 합의아래 해외자본유치 등을 추진해온
기업이다.

그러나 이번에 퇴출대상으로 분류돼 공개됨에 따라 협상력이 약화됐고
결과적으로 값어치만 떨어지는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다.

< 허귀식 기자 window@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