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우리 경제처럼 모든 부문이 극도로 부실화한 상태에서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연할 수밖에 없다.

기업과 금융부문 중 어느쪽의 구조개혁이 진행되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두 부문보다 정부부문의 개혁이 더욱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어느 부문의 구조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뜻에서의 우선순위 문제라면
구태여 따져볼 필요가 없다.

정답은 단 하나.

즉 세 부문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한 부문의 부실이 다른 부문의 부실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형국이어서 다른 부문의 부실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한 부문의 부실을
완전히 청산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이 한 부문의 개혁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음 부문의
개혁에 착수하는 방식으로 대처해도 될 만큼 한가한 것도 아니다.

이 순간에도 인도네시아사태, 엔저 등 우리의 발목을 잡을 일들이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하루라도 빨리 강해진 체질로 다시 태어나야 이 험한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고 그렇게 되려면 모든 부실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한 부문씩 개혁해 나가는 것에 비해 세 부문의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생각만큼 크게 더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각 부문이 능동적으로 개혁 주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적절히 조율해
나갈 수 있다면 한꺼번에 개혁해 나간다고 해서 특별히 더 큰 힘이 들
이유가 없다.

이렇게 각 부문이 책임을 지고 개혁을 수행해 나가는 것이 정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어느 부문의 개혁이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지의 관점에서 본 우선
순위라면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의 성격에 비추어 볼때 가장 중요성을 갖는 것은
당연히 기업부문의 개혁이다.

따져보면 외환위기의 배후에 금융부문의 부실이 있고 금융부문 부실의
배후에는 실물부문의 부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금융기관이 대규모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것도, 해외에서 들어온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실물부문의 부실에 그 이유가
있다.

실물부문 부실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가 만들어진데
대해 기업에 전적인 책임을 묻기는 힘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 동안의 과잉투자와 방만한 경영이 경쟁력 상실의 궁극적인
원인이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어찌 되었든 이 단계에서 책임의 소재를 따져야 별 소용이 없고 기업 스스로
이 구조를 타파하고 경쟁력을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선진국 수준으로 높아질 때 비로소 위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벌이고 있는 개혁작업의 궁극적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으므로
기업부문의 구조개혁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핵심은 기업의 개혁에 있으며 금융과 정부부문의 개혁은
바로 이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도록 돕는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금융이나 정부부문의 구조개혁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금융부문의 경우 우선 부실금융기관을 솎아낸 다음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을 재창출하면 개혁작업이 거의 끝난다.

부실채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금을 어떻게 마련하며 그 부담을 누가
지게 만드느냐는 등의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개혁의 방향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정부부문의 경우에도 모든 군살을 제거하고 쓸모없는 규제를 과감히 청산
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된다.

반면에 기업부문의 구조개혁은 그 방향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힘든 과제다.

부실기업정리 정리해고 업종전문화 기업지배구조의 재편 등 쉽사리 답을
얻을 수 없는 숙제들이 산적해 있다.

천문학적인 부채.자본비율을 어떻게 끌어내리느냐는 문제 하나만 해도 그
해법을 찾는데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다해도 풀어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우리경제의 미래는 이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joonklee@plaza.snu.ac.kr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