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공기업민영화는 공기업개혁의 교과서로 불린다.

마거릿 대처 정부가 ''영국병의 본산''으로 치부되던 공룡집단 공기업을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민간기업으로 탈바꿈시킨 과정과 노하우를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규제연구센터실장(연구위원)의 현지진단을 통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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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병을 치유하기 위한 대처행정부의 개혁은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 배제를
위한 "민영화, 경쟁도입, 독점기업에 대한 규제" 세 가지로 요약할수 있다.

이와 같은 개혁은 79년이래 대처 행정부를 필두로 한 보수당 정부
집권기간 동안 일관된 정책이었다.

결과는 영국경제의 경쟁력 회복과 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으로 나타났다.

영국 민영화는 점진적으로 사회주의적 지지기반을 허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대처정부가 집권즉시 공기업 민영화부터 추진한데는 생산 분배 교환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노동당을 야당으로 상대해야 하는 정치적인 배경이
깔려있다.

대처의 보수당은 노동당의 정치적 지지기반이 되는 공공부문을 축소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보수당기반을 강화하는 지름길인 동시에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대처는 민영화의 실마리를 바로 공기업에서 찾지않고 공공주택사업에서
풀어나갔다.

저소득층에게 임대되었던 국가소유 주택을 대폭 할인된 가격에 세입자에게
매각하는 정책이었다.

과거 노동당의 지지기반인 저소득 계층이 주택소유자로 전환되어 자산의
소유자가 됨으로써 노동당의 지지기반에서 이탈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보수당의 지지기반을 넓히는 역할을 하게한 것이다.

이와 같은 공공주택의 세입자 매각과 함께 영국정부는 소규모 공기업들
가운데 이미 민간과 경쟁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매각에 착수하였다.

즉, 민영화 초기인 79년부터 83년 사이에 영국정부는 Associated
British Port(항만관리), British Aerospace(항공기 및 항공기 부품),
Britoil(북해유전 탐사와 원유생산), Cable and Wireless (통신),
National Freight(도로운송)와 BP(British Petroleum;정유) 등 이미
민간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던 기업들의 주식을 우선 매각하였다.

이 단계에서의 민영화를 통해 조달한 정부수입은 연평균 5억 파운드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처행정부는 이 시기에 기업의 내부적 효율성을 증진시킬
수 있고 민영화시 상대적으로 종업원들의 반발이 클 수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종업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주식을 매각한 반면 내부적 효율성
증진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경쟁입찰을 통해서
재정수입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이를통해 이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극복하면서 재정수입을 확대, 민영화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기간중 영국정부는 민영화 대상에서 제외돼 있던 독점적 공기업들에
대해서는 예산에 엄격한 제약을 가하여 경영 합리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주의적 강령을 가진 거대야당이 존재하는 영국에 있어
정치적 저항과 이해 관계자인 노조를 비롯한 각종 이익그룹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소규모 기업들에 대한 민영화의 성공은 다시 1983년부터 1987년에
걸쳐서 Enterprise Oil(석유탐사와 생산), Jaguar(자동차), The Trustee
Savings Bank(은행), British Airways(항공), Rolls-Royce(항공기 엔진)
등 경쟁적 공기업과 BT(British Telecom ;통신)와 BG(British Gas ;가스)
등 독점적 공기업을 포함한 민영화 추진으로 이어졌다.

BT와 BG의 민영화는 50% 이상의 주식을 소액 투자자들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BT와 BG에 대한 민영화는 정부의 재정제약 아래서 이 독점적 기업들의
부족한 투자재원 마련과 정부의 만성적 재정적자를 축소하는 두 가지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두 독점기업의 민영화시 대규모 독점기업을 특정 개인이나 특정
기업이 인수하는 것을 우려하는 국민여론을 반영하여 국민주 방식을
채택했다.

아담 스미스 연구소의 피터 영 국제관계연구실장은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가 87년 이후 민영화 추진을 대세화로 몰아가고 반대세력을 제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소액 투자자 위주의 민영화 방식으로 79년 3백만명에 불과하였던 민간
주식투자자의 수를 93년에는 1천만명으로 증가시킬 수있었다.

공기업 근로자의 90%가 민영화이후 자신이 종사하는 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소유주와 근로자의 구분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주식 보유자 수의 증가는 전통적으로 무산 대중으로 여겨져 왔던 노동자
계층이 기업을 비롯한 각종 자산의 소유권을 가질 수 있고 자산에 대한
투자로부터 이익을 얻을수 있다는 인식을 보편화시켰다.

이는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의 힘을 약화시켰다.

대처 정부는 BT와 BG를 민영화하면서 독점력의 행사를 규제하고 향후
경쟁도입 방안을 마련하기위해서 각각 Oftel(Office of Telecommunication)과
Ofgas(Office of Gas Supply)라는 행정부에 속하지 않은 독립적 규제기관들을
설치했다.

이들 기관들을 미국과는 달리 개별 산업별로 설치하게 된데 대해
Ofgas의 크리스 웹 홍보국장은 "이들이 공기업으로 운영되다가 갑작스럽게
독점적 민간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각종 규제와 감시가 필요한 부분이
너무나 많고 산업의 특성이 대단히 이질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스산업의 경우 민영화와 경쟁도입을 위한 수직적 분할을 통해
규제가 대부분 시장경쟁에 의해서 대체됐다.

당연히 지금은 규제기관의 기능이 축소됐다.

조만간 Ofgas와 같은 처지에 놓인 전력산업의 규제를 담당하는
Offer(Office of Electricity Regulation)와의 통합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87년부터 91년까지 마무리된 제3단계 민영화는 British Steel(철강),
British Airport Authority(공항관리), CEGB(the Central Electricity
Generating Board ;전력)와 수도산업에서 이뤄졌다.

이 민영화 단계에서 영국정부는 BT나 BG의 민영화시와는 달리 CEGB와
수도산업의 수직적 분리와 민영화를 동시에 시행하여 경쟁도입을 위한
조치를 민영화 이전에 시행하였다.

전력산업의 경우 발전 송전 배전의 수직적 통합상태를 해체하여
National Grid라는 송전회사와 12개 지역배전회사를 지역회사로
독립시켰다.

또한 CEGB를 분할하여 2개의 비핵발전 전력회사들인 Power Gen과
National Power와 1개의 핵발전 전력회사(Neclear)로 출발하게 하여
경쟁을 도입하였다.

또한 2단계 민영화 조치에서와 마찬가지로 Offer 와 Ofwat(Office of
Water Services)를 설립하여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가격 및 품질규제 등을
행하도록 했다.

이들 규제기관들은 지속적으로 민영화 기업들의 행태를 규제하고
경쟁도입과 촉진의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제기관들의 노력은 전력산업의 경우 민영화초 2개 비핵발전
전력회사와 공기업으로 운영되던 1개의 핵발전회사만 존재하던 영국의
전력시장에서는 현재 이 2개 전력회사로부터 발전시설을 인수하고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신규 발전소를 건설한 Eastern이 전체 시장의 11%를 장악하고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을 통해 제2의 핵발전회사로 출발한 British Energy가
또한 시장에서의 활발한 경쟁을 통해 Eastern에 필적할만한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제3단계 민영화에 이어 최근에는 런던의 운수산업인 런던버스와
런던 지하철의 민영화와 외주(Contracting Out)가 지속적으로 계획되고
시행되고 있다.

런던버스의 경우 이미 민영화를 완료한 상태에 있으며 지하철의 경우
기존의 지하철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에 대한 민자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이 작업은 놀랍게도 노동당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시장과 경쟁에 의한 경제적 활성화의 추구라는 원칙이 보편적인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어느 정당에 의해서도 인정되는 시기가 영국에
도래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