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개인의 삶에서부터 나라 전체까지 구조조정의 고통을 요구받고
있다.

또 이 역경을 반드시 이겨내지 않으면 안될 위기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한곳도 아픔이 없는 곳이 없겠지만 특히 봉급생활자의 허망감과
위기는 심각하다.

나는 원래 물을 무척 좋아했다.

내 고향 안동 도산 분천.

그곳은 만년의 농암 이현보 선생이 효도를 다하면서 그 유명한 "어부가"를
읊었던 곳이다.

지금은 댐속에 잠겨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나는 그곳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어린 시절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죽음의 문턱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형님의 손을 잡고 삶을 되찾은 후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 늘 출렁이고 있는
강과 호수와 바다.

삶에 지쳐 허덕이며 방황하는 나에게 삶의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는 마지막
보루이기에 나는 물을 좋아한다.

20년전 나에게 낚시를 권유한 사람은 내과의사였다.

낚시를 가르쳐 준 사람은 직장동료로서 또는 친구로서 평소 존경하는
박준서 형과 유재성 형, 그리고 오창건 형이었다.

우리는 흐르는 물속에 삶의 풍진과 오욕을 씻어내고 출렁이는 파도속에
인생 만사를 묻으며 잔잔한 호숫가에서 세월을 낚았다.

증권거래소의 낭만파들이 모인 낚시회에서는 삶의 풍성한 여유를 배웠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칠흑의 밤,물이 좌대 끝까지 차올라 속옷마저
흠뻑 젖던 밤은 차라리 "후련함"이었다.

파도 심한 바다에 배를 띄웠다가 대피경보를 만나 서로 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육지만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던 때의 이충진 부장, 이영태 차장,
이대근 과장, 윤홍기 과장, 정창석 대리, 서종남 대리 등등.

전날 밤 늦은 술 덕분에 이승과 저승을 넘나든 숙명의 배를 운좋게 타지
못(?)하고 방파제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조병일 차장과의 해후는 정말
극적이었다.

서종남 대리는 그런 일 이후에도 지성으로 30여년 전통의 파란만장한
증권거래소 낚시회 살림을 도맡아 꾸려가고 있다.

IMF시대, 격동의 금융시장 한편에서 파란색 전광판을 말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지금의 현실.

그러나 생사를 넘나들며 배를 띄우던 때의 의지로 하루빨리 이런 어려움을
털고 일어나야겠다.

언젠가 두메산골 낚시터에서 경험한 것처럼 이 산하의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끼며 낚시를 만끽하는 날이 곧 올 것으로 굳게 믿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