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이든 위기에 처하게 되면 기라성같은 지도자들이 때를 맞춘 듯
그 힘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임진란의 비운의 명장 이순신, 이스라엘을 건져낸 출애급의 영웅 모세가
그랬다.

그러나 구원을 갈구하는 민족의 염원을 빌미로 엉뚱한 욕심을 채우는 거짓
"메시아"들이 날뛰는 때 역시 국난의 시기이다.

그럼 환란시작이후 1백일간 한국경제를 지배해온 IMF는 한국에 무엇인가.

금융개혁으로 1인당 소득 1만달러 경제를 되돌려줄 구세주인가.

아니면 금융위기를 이용하여 IMF기금의 최대주주인 미.일.유럽
채권은행단의 권익을 수호하고 한국납세자들의 등골을 시리게 하는
생선가게의 고양이인가.

불행히도 답은 후자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1백일간 IMF의 성과를 점검해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대달러 환율이 1년전 8백원의 두배수준에 머무는데도 환란을 해결하려는
의지는 실종되어 있다.

정부의 부실은행채무인수, 예금보장기금등 보호기금 남발과 특융,
협조융자로 금융이 만신창이가 되어 통화질서가 붕괴되고 있다.

지난 3개월간의 인플레가 7%, 이를 복리로 계산하면 연평균 31%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환율은 31%만큼 더 오르게 된다.

환란으로 당장 집이 불타고 있는 지금은 통화량수축으로 원화가치를
안정시켜 무엇보다도 맨먼저 불부터 끄고 볼 일이다.

이를 방치하고 캉드쉬의 재벌비판 발언이후 지배구조개선이다,
빅딜이다해서 재벌두들기기로 아까운 시간을 축내고 있다.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 IMF인데 종금사들만 문을
닫게하고 부실시중은행들은 모두 살려두었다.

외국인 투자 문호는 활짝 열고 국내금융기관의 부실은 그대로 두었으니
더욱 큰 금융위기가 걱정된다.

또 1인당 원금의 첫10만달러로 한정된 미국의 예금보장이 80년대
예금대부조합 1천5백억달러 사고의 원인이 되었는데 한국의 예금보장은
원금의 상한도 없고 이자까지도 전액지급이어서 대형 금융사고를 우려하게
한다.

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부실업체는 망하고 자금이 건실한 사업체로 흘러가야
한다.

그런데 IMF구제자금, 정부의 특혜금융을 받는 우선순위를 보면
불량금융기관과 부실기업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시중 자금은 한정되어있는데 불량업체가 자금을 독식하니 우량업체는 높은
신용도에 관계없이 고금리부담으로 등이 휜다.

부실업체들은 구제자금을 받으면 달러는 곧바로, 그리고 원화융자도
시중에서 환전하여 달러로, 해외의 불량채권자에게 단기채무상환으로
내보낸다.

외화벌이를 해낼 수 없는 밑빠진 부실업체에 자금을 계속 부어대니 아무리
달러가 들어와도 환율이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와중에서 유일하게 결코 손해안나는 장사를 하는 집단이 있다.

해외의 불량투자자,즉 국제채권은행단이다.

높은 투자이문과 고리대는 높은 위험을 수반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고서 한국에 투자하여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스스로의 투자잘못으로 한국의 부실은행에 돈을 떼이게
되자 IMF를 앞세워 정부가 빚보증을 서지 않으면 다음차례 IMF지원금과
90억달러 대기자금을 끊어버린다며 한국정부를 위협하고 회유하였다.

그리고 미국 재무부,연방준비이사회의 힘까지 동원한 바있다.

그래서 뉴욕 단기외채협상으로 한국의 부실은행에 떼이게 될 채권을 정부
빚보증으로 1백% 안전하게 되돌려 받도록 만들었다.

사실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로드쇼라는 명목으로 국가대표를 보내
국제부실투자자들에게 제발 정부 빚보증을 받아달라고 애걸하러 다닌 것이
지난 몇주간의 정부당국 행각이다.

서커스 재주는 한국이 보이고 이득은 국제채권은행단이 챙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모자라 폐쇄종금사 외채에도 정부빚보증을 받아냈으니 IMF의
국제채권단 보호능력에 탄복할 따름이다.

부실재벌의 외채 정부빚보증이 다음 수순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국내부실업체가 받아 국제부실투자자에게로 넘겨주는게 IMF구제자금이라면
IMF가 한국경제를 회복시켜주기를 기대할 수 없다.

고통을 당하는 것은 IMF 돈 상환을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한국의
납세자들이다.

IMF구제자금은 받으면 받을수록 한국 납세자 부담은 커지는 반면
해외불량투자자에게는 이득이 되고 금융개혁은 뒷전이 된다.

이제 미망에서 벗어나 IMF의 주 목적이 국제채권단 보호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자주적으로 개혁 강도를 높여 부실은행과 부실기업을 처리하고
이들에게 자금을 댄 국제투자자도 손해를 보도록 해야한다.

또 통화공급을 줄여 원화가치를 회복시켜 환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IMF는 한국금융위기 타개의 구세주가 아니다.

한국경제의 개혁은 한국의 책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20일자).